"뭐야, 청룡. 불도 안 켜고…."
"불 켜지마!"
단순한 투정이라고 생각했다. 또 뭐가 그리 서운해서 불까지 다 꺼두고 방 한 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지. 나는 작게 한 숨을 내쉬며 불을 켜려 했으나 잔뜩 날이 선 목소리로 불을 켜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스위치에 가져다댄 손을 내렸다. 녀석은 방 안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에 이불을 겹겹이 뒤집어쓰고는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엄마에게 잔뜩 혼이 난 아이가 설움에 콕 박혀있는 모습과도 비슷해 보였다. 나는 청룡에게 다가가며 골똘히 머리를 굴렸다. 내가 뭐 잘못한 일이라도 있나?
딱히 걸리는 것은 없었다. 오늘도 지극히 평소와 같았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휴일이어서 모두가 중앙에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평일에 못잔 잠을 몰아 잔다고 실컷 늦잠을 자고 아침 겸 점심을 먹었었다. 밥을 먹은 뒤엔 수련이나 하자 싶어서 녀석을 제외한 둘을 불러 대련을 하자고 했다. 청룡은 설거지를 마치곤 구경이나 하겠다며 마루에 앉아 우릴 바라봤다. 한참을 현무 녀석과 몸을 부딪치고 있었는데 매화장 한 켠에서 개와 씨름을 하던 주은찬이 녀석을 불러내 새 주술을 연마했으니 한 번만 써보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나나 현무 녀석도 있었으나 굳이 청룡을 끌어내 매화장에 세운 주은찬이 뭐라뭐라 주문을 외워댔으나 결과는 꽝. 머리를 긁적이며 '멍걸이한테는 됐었는데….'하는 주은찬을 바라보며 청룡은 니가 그럴 줄 알았다며 땍땍댔다. 그게 끝이었다. 정말, 그게 끝이었다.
뭘 알아야 다독여주던가 하지. 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둥그렇게 솟은 이불더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앞에 바짝 붙은 내 기척을 느꼈는지 청룡은 이불을 더 꽉 싸매곤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머리로 추정되는 가장 솟은 부분에 손을 올려두곤 가볍게 쓰다듬었다. 내 손이 머리에 닿을 때 마다 녀석은 눈에 띄게 움찔댔다. 왜. 왜 그러는데, 청룡. 나는 딱히 다정한 편은 아니었지만 늘 나보다 굴곡이 많은 청룡의 감정을 받아주려면 마음정도는 너그러워야 했다. 얼마나 머리를 토닥였을까 여전히 반응이 없는 청룡에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려 하는데 이불이 잘게 떨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는 얕게 인상을 쓰곤 이불더미를 바라봤다. 춥나? 감기? 나는 청룡의 발치에 있는 이불을 집어 들추려했으나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며 더 꽁꽁 숨어버리는 녀석의 행동에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이렇게 꽁꽁 싸매고 있으면 내가 뭘 알겠냐고. 이 어두운 방에서 잘게 떨리는 이불 끝을 눈치 챈 것만으로도 내가 대견스러울 지경인데. 나는 일단 청룡에게서 손을 떼곤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점점 더 크게 떨려오는 몸에 소리를 죽이고 있자니 쌕쌕대는 숨소리도 들렸다. 아픈 게 맞는 거 같은데. 나는 녀석이 방심한 틈을 타 이불을 휙, 걷어 올렸다.
"윽, 싫…."
"너 왜 그러는데. 어디 아파?"
이불을 벗겨내긴 했으나 어둑한 방에 청룡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좀 당황한 듯 한 표정인가. 화난건가. 아님 울고 있었나? 일단 아픈 건 맞는 듯 녀석에게 가까워진 팔에 열기가 닿고 있었고 쌕쌕대는 숨소리가 좀 더 크게 방을 채워 나갔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던가. 아님 누워있지 이불이란 이불은 다 뒤집어쓰고 구석에 기대 앉아 있을 건 뭐야. 나는 당최 분간이 되지 않는 그 얼굴을 자세히 보려 눈을 가늘게 뜰 참이었다.
"나, 나 좀 어떻게 해줘봐, 백건."
애닳는 목소리로 내게 안겨오는 청룡만 아니었다면.
"뭐, 너, 뭐, 뭐야. 너 왜 그래?"
나는 매우 당황했다. 매우, 아주, 많이, 엄청! 다짜고짜 내 목을 끌어안고 품에 안겨오는 청룡의 몸은 열이 오르다 못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빛이 있었다면 젖어버린 흰색 반팔이 녀석을 오롯이 비칠 것 같았다. 나는 한 손으론 안겨오는 녀석의 허리를 감아 안고 다른 손으로 이마에 손을 댔다. 열은 없었다. 몸에 뜨끈한 기운이 돌긴 했으나 짚은 이마엔 열이 없었다. 식은땀에 잔뜩 절은 머리칼이 손 끝에 걸려왔다. 나는 이상함을 느끼며 뺨이며 드러난 팔뚝에 손을 댔다. 감기에 걸려 뜨겁게 오르는 열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몸에 손을 댈 때 마다 자신의 몸을 문질러 오며 신음하는 청룡은, 뭔가 이상해도 단단히 이상했다. 제대로 힘도 들어가지 않는지 목을 끌어 안아올 때 스쳤던 손이 젖어있었다. 내 다리 사이를 차지한 엉덩이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내 허벅지 위에 앉아있는 청룡의 허벅지와 종아리가 내 허벅지를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결정적으로, 내 아랫배에 닿아 문질러대는 청룡의 아랫배가 질척거리고 있었다. 저쪽에선 애가 타 죽으려 하는 상황이었지만 내 쪽에선 이렇게 하나하나 짚어내지 않으면 무슨 상황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을 상황이었다.
'손 떼라?'
그도 그럴 것이, 청룡은 유난히 스킨십을 싫어했다. 어찌저찌 사귀게 된 사이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내가 녀석에게 닿을 수 있는 범위는 지극히 적었다. 가볍게 입을 맞추고 나면 녀석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고 밥 하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끌어안으면 달라붙지 말라며 떼어내기 일수였다. 은근슬쩍 손을 잡으면 사람들이 본다며 털어냈고 겨우겨우 진하게 입을 얽다가도 손이 몸을 쓸어대면 마주대던 입조차 떼곤 정색에 정색을 했다. 와, 이렇게 말하니까 나 되게 불쌍하네. 뭐 아무튼, 가끔 살살대며 하는 말이나 스킨십을 하고 난 뒤 붉어지는 얼굴을 보며 날 좋아하긴 하는구나,하고 안심할 정도로 녀석은 몸과 몸이 닿는 것을 싫어했다.
'청룡후계자는 인간이 아니라 용족이라고 하더라. 겉모습만 인간이라고.'
주은찬은 청룡이 용족이라고 했으며 한동안 이곳에서 말썽을 부리던 신선도 겉모습만이 인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감정에 남들보다 무뎌보이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몸을 마주대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그저 서툰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를 위로했다. 녀석도, 나도 처음이니까. 첫 사랑이고, 첫 연애니까 그저 받아들이고 표현하는게 어색할 뿐이라고 늘 나를 다독였다. 그런데….
"흣, 아까 주은찬이 주술, 걸어보겠다고 한 다음부터어…, 몰라. 얼른, 응, 얼른 백건…."
아무리 들어도 귓가를 의심하게 된다. 아무리 허벅지 위에서 가쁘게 몸이 닿아도 믿어지지 않는다. 꿈에서나 나올법한, 아니 꿈에서 조차 제대로 허락되지 않았던-본 적이 없었으니- 청룡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자 나는 내가 주술에 걸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멍하니 움직이지 않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청룡은 귓가에 애가 끓는 신음을 흘리며 목에 걸고 있던 손을 풀어 아래로 가져갔다. 나는 나를 쥐는 녀석의 작은 손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고 녀석은 나에게 더 닿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옷 위로 닿는 둘이었으나 녀석은 이미 젖을대로 젖어버려 두 옷이 마주댄 촉감이 아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주은찬이 주술을 걸겠다고 한 다음부터면 주술 때문인가? 어떻게 주술이 잘 못 걸려야 이렇게 되는거야. 일단 주은찬한테 가 봐야 하나. 나는 억지로 생각을 이어나가려 했으나 청룡이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머리가 하얗게 비어가는 것을 느껴야 했다. 나를 쥐던 손이 내 가슴께에 와 뜨겁게 쓸어대고, 어깨에 기댄 이마가 목을 향하여 뜨거운 숨을 토할 때에,
"백건, 백건…, 으읏, 아, 백거언…."
"청룡"
"제발…, 응? 제발"
"지금부턴 빼도 안 봐줘."
더 이상 생각 하는 것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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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가람]Mastervat**n (0) | 2015.01.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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