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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1.23 [백청주] Midnight phone call
  2. 2015.01.23 [백청주] 本色 - 上
  3. 2015.01.23 [현오가람/현우가람] 고민이 있습니다, 낭자
둥굴레차!/etc | Posted by 윤새벽 2015. 1. 23. 16:20

[백청주] Midnight phone call

 

 

 


 물소리가 들린다. 이내 멈출 저 물소리는 한때는 내 이성을 시험하던 일종의 도구였다. 씻지 않고 내게 올 리가 없는 너지만 우리 집안에 들어서면 꼭 다시 씻던 넌, 내 시야에서 차단된 자신을 물소리와 함께 잔뜩 상상하며 애태워보란 듯이 항상 문을 완전히 닫아두지 않은 채 샤워를 했다. 힘 있게 바닥으로 내려치는 물소리와 몸을 타고 흐르다 타일로 씻겨 내려가는 물소리가 다르다는 것을, 나는 너 때문에 알게 되었다. 네가 사다두라고 닦달을 하던 바디워시 또한 사람의 살 냄새와 향이 섞이면 혀가 아릴정도로 단내가 난다는 것 또한, 모두 네가 가르쳐 준 것들이었다.

 

 난 그저 침대에 얼굴을 묻고는 눈을 꽉 감았다. 언제인가는, 그 화장실의 문틈새로 씻는 널 훔쳐본 적도 있었다. 네가 그것을 바라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그 틈사이로 가늘게 보이는 그 매끈한 몸을 끈적한 시선으로 핥아낸 적도 있었다. 아직도, 그 날의 넌 이렇게 눈을 꽉 감아도 단숨에 그려낼 수 있었다. 성인남자치곤 어려보이는 몸과 작은 체구, 말라 툭, 불거져 나온 뒷목의 뼈에서부터 작고 동그란 엉덩이를 쓸어내리던 손, 네 주변을 감싸며 피어오르던 김들과, 하얗다 못해 붉은 빛이 도는 몸을 타고 내리던 수없는 물방울까지. 나는 여전히, 네 모습을 상상하면 숨이 턱턱 막혀오고 가슴이 뻐근해지곤 한다. 이것은,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물소리가 멈추었다. 넌 왱왱대는 드라이기로 머리를 반쯤 말리곤, 내 곁으로 올 것이다. 나는 느긋하지 할 수 없지만 느긋한 척을 하며 침대헤드에 비스듬히 기대 널 기다리고, 넌 허리에 수건을 감고는 여전히 물기를 머금은 머리를 가볍게 털어대며 내게로 걸어올 것이다. 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존재인 것 마냥 한쪽 입꼬리를 가볍게 올리곤 침대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런 네게 잔뜩 홀린 표정을 지은 난 네 팔목을 잡아당기고 넌 엉거주춤하게 한쪽 무릎을 침대 위로 올리곤 좀 전보다 더 야릇하게 웃으며 허리춤에 감겨있던 수건을 풀어 던지며 내 위에 올라탈 것이다. 늘 비슷한 패턴의 유혹, 그걸 알면서도 넘어갈 수밖에 없는 나의 보챔. 그리고 이어지는, 섹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전처럼 마냥 행복하지 않다는 것은 내가 변한 것일까, 네가 변한 것일까.

 니가 내 위에 올라 나를 바짝 안고는 가쁜 템포로 허리를 놀렸던 어떤 날인가에, 나는 우연히 네게서 눈을 돌려 쉼 없이 반짝이는 네 핸드폰을 보았다. 휴대폰의 불빛은 이내 사라졌지만, 나는 이미 여러 통의 부재중전화가 쌓여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굴까, 누가 널 이렇게 찾는 것일까. 사실, 내가 네 첫 번째가 되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저 사람도 나와 같이 너의 작은 부분이라도 나눠가지고 싶어 하는 어리고 어린 희생양인걸까. 개새끼,라고 저장되어있는 발신자는 그 뒤로도 서너통의 부재중 전화를 더 남기고서야 잠잠해졌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내 머릿속은 쉽게 멈추지 못하고 끝도 없이 생각의 생각을 물었다. 넌 다른 사람에게도 이렇게 안길까. 나에게처럼 화장실의 문을 반쯤 열어두곤 마지막 수건은 꼭 나의 눈앞에서 풀어 내리고, 가끔은 먼저 달라들어 위에 올라타는. 이 모든 것들을 그 사람에게도 똑같이 할까. 아니면, 그 사람에겐 얌전을 떨며 먼저 손을 뻗어오길 기다릴까. 나는 내게 감겨오는 너를 가볍게 안아주며 네가 몸을 들썩일 때마다 함께 몸을 움직여 주었다. 하지만,

 

 

 

'주은찬. 집중 안해?'

 

 

 

 그날의 섹스는 최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날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며 기분 나쁜 티를 그렇게도 내던 너를 겨우 만족시켜 재우고서야 나는 답이 나지 않던 질문을 다시금 되뇌었다. 마치 연인처럼 내어준 팔을 베고야 잠드는 품 안의 작은 너를 보면 그런 상상 따윈 하지 않고 싶지만, 너에게 가장 첫 번째인 사람은 누굴까, 그 사람에게는 다른 모습을 보일까, 하는 상상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네가 그 누구인가에게 짓눌리는 모습까지 상상하고야 눈을 꽉 감고 머릿속을 흐트러뜨리려 노력했다.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숨을 고르고 있을 때쯤, 얕은 진동이 울렸다. 내가 눈을 떠 그것이 누구의 핸드폰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품안에서 옴찔대는 네가 느껴졌고 나는 우습게도, 자는 척 눈을 꽉 감아버렸다.

 

 

 

 

 

 

'왜, 바빴어. 마감 코앞일 땐 연락 안 받는 거 너도 알잖아. 지금은 피곤해. 내일 봐. 내일 갈게'

 

 

 

 

 

 

 누굴까, 애써 헤쳐 두었던 생각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아까 그 개새끼인걸까. 얼핏 들으면 평범한 통화일지도 모르는 반쪽자리 대화를 들으며 나는 너를 또 다시 누군가의 품안으로 밀어 넣었다. 넌 여전히 내 품에 안겨 작은 목소리로 웅얼거렸고, 이따금 몸을 돌려 내 손끝을 간질이기도 했다. 태연히 나를 만져대며 전화기를 붙잡고 툴툴대던 넌 정말 졸린 것인지 말끝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알았어어…. 나 진짜 졸려. 응, 응…. 내일 봐, 건아.'

 

 

 

 

 

 

 가만히 네 목소리를 듣고 있던 나는 무심코 눈을 뜰 뻔 했다. 네 입이 부른 이름이 내 귀에도 너무 익숙한 것이어서, 나는 당장에라도 눈을 떠 너를 바라보고 싶었다. 너무 놀라 움찔거리는 내 몸을 너도 느끼지 않았을까 겁이 날 정도로 그 이름에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쿵쾅대며 심장이 거세게 뛰어댔다. 네 곁에 바짝 붙어있는 너라면 갑작스레 빨리 뛰어대는 심장소리쯤이야 쉽게 알아챌 것만 같았다. 건, 건, 백건. 내가 아는 그 이름이 맞는 것일까. 나는 애써 숨을 골라내었다. 당장이라도 그 휴대폰을 빼앗아 발신자를 확인하고 싶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쾅쾅대는 심장을 잠재우기라도 하려는 듯 너는,

 

 

 

 

 

 

'나도…. 아, 참 귀찮게. 나도 사랑해, 백건. 응, 끊어….'

 

 

 

 

 

 

 내 귓가에 그 녀석의 이름을 정확히 쑤셔박았다. 나에겐 아무리 매달리고 괴롭혀도 허락하지 않았던 한마디는 너무도 쉽게도 내뱉어져 현실성마저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내 품안에 안겨있는 사람이 네가 아닌 다른 이일것만 같았다. 내가 아는 너는 이렇게 약하고 고분고분하지 못했다. 눈을 뜨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내 곁에 누워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당장에라도 눈을 뜨고 싶었다. 그 옅어지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너는 색색대는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고, 나는 네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나서도 한참이나 눈을 뜨지 못했다. 차라리 다른 사람이라면 좋겠다고, 그렇게 수없이 말을 되뇌었다. 하지만….

 

 

 

 

 

 

'일어나, 나 일찍 나가봐야 해'

 

 

 

 

 

 

 다시 눈을 떴을 땐 집에 왔던 그 모습 그대로 내 앞에 서있는 네가 보일 뿐이었다. 왔던 네 모습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어서 서운함이 밀려들 것만 같았다. 나에겐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으려는 것만 같아서. 아침의 밝은 빛이 눈으로 떨어져 내려 네 모습이 흐릿했다. 내가 꿈을 꾼 건 아닐까, 하는 우스운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내가 너무 터무니없이 사실적인 꿈을 꾼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그 반대로 처음부터 너와 함께 있는 이 순간들이 모두 꿈인 걸까. 눈앞에서 겉옷까지 모두 챙겨 입고 여전히 잠에 취한 듯 한 나를 내려다보는 널 보며 난 정말 이 모든 게 내가 알고 꾸며낸 환상이 아닐까 뒤돌아 나가려는 네 손목을 붙잡았다. 그제야 맞춰지는 초점에 나는 한참이고 네 얼굴을 바라봤다.

 

 

 

 

 

 

'왜 이렇게 일찍 가, 가람아'

 

 

'약속있어'

 


'…누구랑?'

 

 

 

 

 

 

 내 목소리가 작게 떨려왔다. 잠에 취해 갈라진 목소리 같기도 했다. 차라리, 그렇게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랑? 간단한 말이었지만 다시금 가슴이 떨려오는 것 같았다. 점점 커지는 심장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사실대로 말해줄까, 백건을 만나러 간다고. 그럼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것 처럼 잘 다녀오라고 웃어줘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엉켰다. 하지만 그런 내 말에 넌 날 빤히 내려다보며 작게 인상을 썼다. 내 손에 잡힌 네 손목을 가볍게 비틀어 때어내곤 그새 붉어진 손마디를 돌리며 넌 대답했다.

 

 

 

 

 

 

'알거 없잖아'

 

 

 

 

 

 

 너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나섰고, 나는 닫혀버린 문을 멍하니 바라보다 손안에 미지근히 남아있는 네 온기를 놓치고 싶지 않아 손을 꽉 쥐었다. 우스웠다. 내 자신이. 누구에게 가는 것인지, 알고 있으면서. 아니라는 확인을 받고 싶었던 걸까. 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난 영원히 이 위치 이상으로는 옮겨갈 수 없다는 사실을. 꽤나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가슴 한 켠이 무거웠다. 애초에 너에게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확인을 받을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게다가, 그 상대가 십년은 훌쩍 넘긴 오랜 친구일 것이라는 사실 또한,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백건, 넌 알고 있을까.

 

 

 

 

 

 

 

 

 

 

 

 

"뭐야, 피곤해?"

 

 

 

 

 

 

 샤워를 마친 것인지, 어느새 넌 내 곁에 가까워져 있었다. 나는 네 목소리에도 그저 베개에 얼굴을 묻고 있을 뿐이었다. 곁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며 달짝지근한 바디워시 향이 뜨끈한 네 몸의 열과 함께 옮겨왔다. 그 향에 코 끝이 간질거렸다. 뜨거운 기운에 몸이 풀려 머리가 멍해졌다. 지금 이렇게 네 얼굴을 보지 않는 것은 일종의 투정이지만 내가 이 향을, 이 온기를, 이 순간을 언제까지고 잊고 살 수 있을까. 나는 조금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몸 안 구석구석으로 네 향이 가득 찼다. 나는 제법 멍청한 축에 속하는 것 같다고 그 언젠가의 너는 말했다. 알고 있다. 그런 것쯤은. 하지만 네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나의 그런 모습은 제법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지만 모든 것을 알고도 이런 멍청을 떨만큼 좋은 사람은 너밖에 없다는 것. 그것은 평생 네가 몰라야할 사실이었다.

 

 

 

 

 

 

"미리 말하지. 나중에 와도 되는데."

 

 

 

 

 

 

 가는 손가락이 머리칼을 헤집었다. 그 손끝이 너무 따뜻해서, 나는 울컥하고 올라오는 무엇인가를 애써 눌러야했다. 오늘은 유난히 시간이 촉박한 만남인걸 알고 있다. 해가 어스름 넘어갈 시간, 완전히 어둠이 내리면 누군가에게로 옮겨갈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이 이후로 또 누굴 만나러갈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어렴풋 짐작은 갔다. 그런 내 머릿속을 알고 있다는 듯 너는 하염없이 내 머리를 쓸어내렸다. 그 손길에 이런저런 잡생각이 옅어지는 것 같다가도 그 녀석에도 그럴까,하는 우스운 생각에 다짜고자 네 손목을 잡아챘다. 그렇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렇게 언제까지고 내 곁에만 있어줬으면 좋겠어. 아무리 생각해봐도, 난 네가 없이는 못 살거 같은데. 내 행동에 너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빤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네 표정이, 가려진 시야 안으로 그려졌다.

 

 

 앞으론 오지마. 이제 그만하자, 청가람.

 

 

 어쩌면, 간단한 말일지도 몰랐다. 내가 그만하잔 소리를 하더라도 청가람은 쿨하게 알겠다고 할 것을 알고 있다. 지금처럼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나뿐이고, 나만 이 붙잡은 손을 놓는다면 모든 것은 정리될 것임을 알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좋아해온 너와 겨우 몸을 섞게 되었고, 너에게 다른 사람이 있음을 알고도 이런 관계를 시작했다. 얼마 전에야, 그 사람이 나의 오랜 친구인 백건임을 알게 되었지만, 나는, 너를….

 

 

 

 

 

 

"놓기 싫어"

 

 

 

 

 

 

 나는 잡고 있는 팔을 잡아 당겨 입을 맞추었다. 너는 그제야 입꼬리에 웃음을 걸치며 나를 끌어올렸다. 나는 그대로 딸려 올라가 다시 너를 눕혔다. 너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이렇게 몇 번이고, 나는 네가 원하는 대로 구를 수밖에 없다. 가난한 하수인과 모든 걸 가지고도 욕심을 부리는 여왕쯤 될까. 나는 그 생글대는 눈가에 입을 맞추곤 목덜미를 진득하게 핥았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이 향을, 지금의 너를, 조금이라도 더 가지고 싶어서. 백건, 너에게 조금도 남겨주고 싶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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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청주] 本色 - 上


"너는 화도 안 나냐?"

 나는 주은찬이 무섭다.

"괜찮아"

 녀석이 꽁꽁 싸매고 있는 그 속 안엔, 어떤 모습의 녀석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本     色 

 주은찬과는, 함께 한지 어언 8년이 다 되어가는 8년지기 친구다. 조금 후엔 10년, 사신이 되어 함께 간다면 그 햇수를 세릴 수도 없겠지. 하지만 나는 주은찬을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남들도 볼 수 있는, 질리도록 착한 녀석의 모습일 뿐이니까. 주의의 사람들보다 조금 더 안다고 할 수 있는 녀석의 모습은, 같은 사신후계자의 길을 걸으며 평범한 인간들에겐 할 수 없는 이야기의 '일면'일 뿐이다. 남들에게 알릴 수 없는 비밀이나 속내가 아닌, 특정한 주제를 이해할 수 있는 녀석에 한한 이야기의 공유일 뿐이란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녀석이 무너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남자 후계자란 이유로 집안 어른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때도, 양기가 강해 주술을 다루는 것이 힘들 것이란 말을 들었을 때도, 수백번을 다쳐가며 수련해도 완성이 되지 않는 주술에도 녀석은 그저 묵묵히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지금 키의 반쯤 될까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녀석은 늘 비슷한 정도의 서글한 웃음으로 모든 것을 무마했다.

 주은찬은 질리도록 착하다. 주은찬을 아는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녀석의 속 안엔 전혀 다른 녀석이 살고 있다. 나 또한 영원이란 시간동안 주은찬을 마냥 착하기만 한 녀석 중 하나로 알고 있을 뻔 했으나, 나는 그 진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너는 화도 안 나냐?"

 어린 시절 스치듯 겪었던 녀석에 비추어보자면, 녀석 또한 지독히도 착한 호구는 아니었다. 열 서너살쯤 되었을 때의 일이던가. 나를 만나고도 1~2년의 시간이 흐른 후였지만 여전히 주술 하나를 겨우 익힌 -그것도 보패를 사용해서만-녀석을 두고 주작가는 여전히 말이 많았다. 주은찬이 태어나기 전, 늘상 여자가 많이 태어나는 주작가에선 이례적으로 여자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았고, 그나마 태어나던 남자아이도 너무 약하거나 금방 죽어버렸다고 했다. 그 후 전신이 붉은 주은찬이 태어나고 나서야 주작가에선 아이들이 하나둘씩 태어났으나 머리가 붉은 여자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가문 내에서는 아무것도 모를 어린 녀석을 앉혀두고 늘상 말이 많았다고 했다. 주은찬이 진정으로 사신이 되어 인간세계를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겨우 글을 깨칠 나이부터 녀석은 주술을 배워야 한다며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여자 주작후계자들은 주술을 몸으로 익혀 자유자재로 다루지만 넌 그럴 수 없으니 하고, 하고 또 해야 한다고. 그렇게 보패의 힘을 빌어 겨우 삼매진화를 깨친 11살의 겨울, 녀석은 '이제야 하나를 배울 줄 알았다면 일찍이 죽여버렸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괜찮아. 어른들이 모이면 늘 하는 말인걸…."

 녀석이 했던 무수한 노력을 알던 난, 그 말을 듣고 내 일보다 더 화를 냈지만 녀석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그 말을 내뱉곤 나를 앞서는 녀석의 등을 바라보며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었다. 저런 호구같이 착한 성격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진지하게 고민을 했던 나날도 있었다. 좋아도, 당황해도, 슬퍼도, 울 것 같아도 녀석은 늘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자릴 피했다.

"너 그러다 홧병으로 죽겠다!"

 나는 녀석의 등을 보며 소리쳤지만 녀석은 그저 눈 앞에 떨어지는 벚꽃잎들을 바라보았다. 방학 중이 아닌 날 녀석이 오는 건, 그렇게 심한 일이 있거나 주술을 좀 더 사용할 수 있게 된 날들 뿐이었다. 물론, 후자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녀석이 온다는 소릴 들으면 먼저 걱정부터 되었었지만. 씩씩대는 나와 반대로 조용히 벚꽃나무 곁으로 걸어가 나무에 손을 댔다. 쌔,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꽃잎들은 힘없이 떨어졌고 나는 그 장면에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아 녀석이 하는 양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빽건"

"왜"

"나도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많아. 특히, 그런 소릴 들을 때면. 내 손은 더럽히기 싫으니 니 스스로 죽어달란 소리랑 뭐가 다르냐고."

 나는 뒤돌아선 주은찬의 표정을 볼 순 없었으나 분명, 슬퍼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선택할 수 없는 운명으로 태어나 수없이 노력해도 끊임없이 부정 받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겨우 12살이 되려는 겨울, 그렇게 어린 생각으로도 주은찬의 상황은 늘 안쓰러웠고 가슴 아파 했었다.

"대신, 그렇게 화가 날 때면 나는 그 분이 가실 때 손을 꼭 잡아드려."

 가슴 아파, 했었다.

"그럼, 내 손에 닿은 거니까, 밀치기만 해도 그런 소릴 하는 사람은 없어질테니."

 녀석은, 그 말을 끝으로 고갤 돌려 날 바라보곤 맑게 웃었다. 보패를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귓가가 주술을 부릴 때 처럼 일순 불타오르는 것 같이 보였다. 나는 순간 불어왔던 바람이 왜 그렇게도 싸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바람 앞에서 흔들리다 떨어져 내리는 벚꽃잎들이 모두 불씨로 보였다. 나는 주작이 그렇게나 붉은 존재였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녀석이 가장 처음으로 익힌 주술, 삼매진화. 녀석이 그 주술에 대해 설명하던 때가 떠올랐다. 손에 닿았던 물체가 충격을 받으면 폭발해 버린다고,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조잘대던 녀석의 모습이 녀석의 웃는 얼굴과 겹쳐져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늘 웃기만 해대던 얼굴 안에 감추어진 녀석의 본심은, 그 한마디의 말로 수면위로 얕게 떠올랐다. 그 후, 주은찬을 대하는 내 태도는 묘하게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면, 속을 알 수 없는 그 녀석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가 녀석이 생각하는 정도인지, 꿈에도 알 수 없어 무서웠다.

"가람아, 내가 도와줄 거 있어?"

 그렇기 때문에 그 속을 모를 녀석이 내 것을 건드리려 하는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눈을 빛내며 녀석의 행동을 쫓고 있다. 나는 녀석의 웃음이 무엇을 감추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녀석의 본심이 얼만큼 어둡고, 얼만큼 삐뚤어진 것인지는 몰라 무섭기는 하지만 녀석의 웃음을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래서, 내 것의 곁으로 다가오는 웃음을 마냥 앉아 보고 있을 수가 없다.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에 감아올리는 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하려는 몸, 내 것을 볼 때마다 웃고 있는 위험한 얼굴까지. 자신을 향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를 내 것은, 이런 내가 괜히 예민하며 타박하지만, 다른 이들을 대할 때와 묘하게 달라지는 그 녀석의 웃음은 그날 벚꽃아래 지어주었던 미소와 닮아있는 것이었다.

"혼자 하는 게 더 맘 편하니까 저리 가있기나 해"

"에이, 그래도 도와주면 빨리 끝날 거 아냐"

"그럼 반찬이나 좀 날라두던가"

"응, 그럴게"

 녀석은 여전히 싱글벙글인 채로 반찬을 옮겨다 날랐다. 내 곁을 지나가던 주은찬은 가만히 서 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보곤 웃으며 말했다. 빽건, 너도 도울래? 얼른 가람이가 해준 밥 먹자. 녀석의 사람 좋은 듯 한 웃음은 여전히 입에 걸쳐져 있었으나 나는 사람들의 눈이 없는 곳에서 청룡을 바라보는 주은찬의 미소를 본 적이 있었다. 쳥룡의 뒤를 쫒다 낮게 눈을 내리깔곤 웃는 그 모습을. 그것은 평소의 웃음과는 달랐다. 저 웃음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널 몰라. 그래서 네 웃음의 의미도 몰라. 하지만, 짐작은 가. 내 것을 빼앗지마. 짐승을 닮아 날카로운 감이 말했다. 확증은 없을지라도, 지금 짓는 져 녀석의 웃음은 소유를 원하는 눈빛이라고.

"주은찬"

"응?"

날 바라보는 얼굴은 여전히 웃는 모습이었다.

"내거야"

"뭐가?"

"더 다가가지마. 손도 뻗지 마. 눈에 담지도 마. 내 것에 손을 대는 건, 너라도 용서 못 해"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을 하곤 날 바라보았다. 저 눈빛이 가증스럽다. 나는 착해. 나는 결백해. 너는 이런 날 알고 있잖아. 누가 더 잘못한 것 같아? 늘 착한 내가 잘못하기라도 했을 것 같아?하고 말하는 듯 한 저 눈빛. 녀석은 누구에게나 손가락질을 받는 어린 시절을 겪으며 살아남을 스스로의 방식을 만들었다. 다른 이들의 눈 안에 비취지는 착한 이미지 안에서, 타인의 손으로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몰아세웠다. 자신이 비난하는 방법보다 남의 손으로 자신을 뭉개는 타인을 비난 하는 방법이 더욱 확실하니까. 그렇게 누구에게나 착한 척을 해대며 자길 감추는 모습은 날이 갈수록 더욱 견고해져만 간다. 방심하고 있을 때를 노리지 않으면 평생 모를 철저함으로 녀석은 자신을 숨겼다. 그런 가증스러운 눈빛으로 으르렁대며 이를 내보이는 날 바라본다. 이런 내가 전혀 이해가 되질 않는다는 듯 날 보던 녀석은 눈을 두어번 깜박이고 나서야 웃음을 터뜨린다.

"뭐야. 별거 아니네, 빽건"

 녀석은 웃고는 내 귓가로 다가와 소근거렸다.

"나는 빼앗을 자신이 있어. 넌 지킬 자신이 없나보지?"

 ​

 녀석은 그 말을 남기곤 내 귓가에서 떨어졌다. 가까웠던 거리를 제자리로 돌리며 웃음을 지웠다. 나는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녀석이 숨겨온 진짜 녀석의 모습이 얼굴에 비춰졌다. 나와 눈을 마주하고 있었으나 내리깔아 보는 듯 한 눈빛으로 표정을 굳힌 녀석의 얼굴은, 어쩌면 평생 볼 수 없었을 모습이기도 했다. 완전한 무표정. 하지만 그 안엔 무수한 감정이 들어있었다. 그 안엔 나에 대한 질투, 나를 향한 견제, 청룡에 대한 애증과 소유욕, 내가 먼저 청룡을 가졌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과 분노가 한데 섞여 있었다. 이래서 네가 늘 웃었구나. 이 모든 것이 그렇게도 여실히 드러나니까. 나는 그제야 녀석이 짓는 웃음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잠시간의 표정을 다시 감추며, 녀석은 웃었다. 저녁 늦어지면 배고파. 가람이가 기다리겠다. 얼른 가자. 녀석이 웃지 않는 그 순간은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녀석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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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십니까, 낭자들. 하하, 네, 요즘 그런 소릴 많이 듣습니다. 얼굴에 고민이 가득한 것 같다구요. 맞습니다. 요즘 큰 고민거리 하나가 생겨서 말이죠. 한두 살 먹은 어린 아이도 아닌데 이런 것을 가지고 고민을 하는 것이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어쩔 수가 없어요. 사람 마음이라는 게 제 맘대로 안 되어 사람마음이라고 하는 것일 테니까요.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유도 이 '사람마음' 때문입니다. 자고로 사신 후계자들이란 속세와 멀어져 자신을 다스리고 다듬어 사신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중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인간들에 마음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는 하지만 신체 건강한 남성으로써 여염집 낭자들의 추파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 일 것입니다. 낭자들의 마음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지는 않는다는 소리입니다. 기를 다스리고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지만 훗날 사신이 된다면 또 다른 사신 후계자를 잉태해 기를 의무 또한 있기 때문에 알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그 상대가 '낭자'가 아닌 점에서 어찌할지를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단 소리입니다. 차라리 고운 한복의 굴곡에 어울리는 참한 낭자라면 고민이 덜 했을 것입니다. 저와 같이 살을 맞대고 몸을 쓰며 자란 남자이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나 매일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이상한 사태는 요 근래에 와서 생긴 일입니다. 모든 시작은,

 

 

 

"야, 현우!"

 

"무슨 일이십니까, 청룡공자"

 

 

 

 청룡공자의 물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련이 없는 시간 동안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TV를 시청하던 한가로운 오후의 어느날이었습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던 그 때에 임금의 앞에 수랏상이 차려지자 얌전히 TV를 시청하고 있던 청룡공자는 제 쪽을 돌아보며 물었습니다.

 

 

 

 "혹시 너네 집에서도 저런거 먹었어?"

 

 ​그 때는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1세기라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한복을 입고, 머리를 올리고, 힘들여 옛스런 말투를 사용하는 것에 연장선인 호기심. 그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속세의 사람들에겐 신기해 보일 것이 분명했고, 실로 그런 질문을 꽤나 들어본적이 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전 솔직히 말했습니다.

 

 

 

"예. 현대의 서양음식이 섞인 상차림 보단 궁중에서 먹던 음식을 즐겨 먹었죠"

 

"신선로나 구절판 뭐 그런거?"

 

"그렇죠. 12첩반상은 기본이었습니다."

 

"집안 식구가 다 그렇게 먹었단 말이야? 그… 너네 형님이라던가"

 

"물론이죠. 오히려 속세의 음식이 더 입에 맞지 않을 정도로요."

 

 

 

 사실, 청룡공자의 멍청한 표정이 보고 싶어 조금의 거짓을 보태었다고는 했지만 이런 결과가 생겨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 날도 제 예상에 빗나가지 않게 입을 떡 벌리며 멍청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청룡공자를 보며 속으로 웃어대었습니다만,

 

 

 

 

 

 

 

"…야 주은찬,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냐?"

 

"…아니…."

 

"근데 이건 다 뭐냐…."

 

"뭘 쳐다봐? 하고 싶어서 한거야. 심심하니까!"

 

 

 

 다음날 아침부터 12첩 반상에 신선로며 구절판, 어선, 미나리강회 등등 집에서도 손이 많이 가 까다로워하던 음식들이 줄줄이 올라와 상다리가 휘어지는 줄 알았지 뭡니까. 이번엔 백호공자와 주작공자의 얼굴이 멍청해질 정도로 갑작스러운 애정표헌이었습니다. 거짓말이 너무했나, 싶을정도로요. 그땐 정말 지난 날 청룡공자가 했던 질문이 아침 수랏상과 겹쳐져 청룡공자가 나에게 마음이 있는건가,하는 생각이 피어올랐습니다. 한참을 그 상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음식에 대해서는 묘하게 자존심이 센 청룡공자를 잘못 건들였나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칭룡공자는 그런 제 생각이 우습다는 듯이 확인사살을 했습니다.

 

 

 

"그… 현우네 집에선, 이런 거 먹었다고 하니까…."

 

"현우 때문에 이걸 다 했다고? 아침부터?"

 

"닥쳐, 이 돼지들아. 주면 먹기나해! 흠, 흠. 그건 그렇고. 맛은 어때, 현우야?"

 

 

 

 이거 초록등에 불이 올라야하는 상황이 아닙니까? 흠, 흠. 속세에선 한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말로 저런 표현을 사용한다고 하던데 말이죠. 뭐, 그거 하나 뿐이라면 제가 설레발을 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그것 외에도 청룡공자의 저를 향한 관심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높아져만 갔습니다. 집에는 또 언제가? 자주 안가?, 그… 집 가면 혼자서 뭐하는데. 형님이랑은 사이 좋아? 등등 저에 대한 관심을 넘어,

 

 

 

"네 생일은 언제야? 너희 가족들 생일은?"

 

 

 

 저의 가족들에게까지 관심을 보이지 뭡니까. 꼭 그런 것 같지 않습니까,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 가족의 생일을 챙긴다거나 남자친구 가족의 조경사를 챙기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물론, 청룡공자가 제 여자친구의 위치였다면 사랑스러워 보였을지도 모르겠으나 아직 제가 마음을 받아준 적도 없는데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청룡공자의 모습을 보자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거죠. 뭐…, 청룡공자도 나쁜 조건은 아닙니다만은.

 

 낭자들은 청룡공자를 가까이서 본 적이 있는지요. 남자라기엔 조금 가는 몸과 선, 무술사로써 몸을 단련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타지 않은 흰 피부, 종갓집 며느리로도 손색이 없을 음식 솜씨와 살림솜씨. 조금 틱틱대고 우위에 서고 싶어하는 성격이나 그 또한 조금 얼러 받아주면 쉽게 마음을 여는 성격까지…. 흠, 흠. 제가 청룡공자를 좋아하는건 절대, 절대 아니지만 청룡공자만의 장점을 대라면 이 말고도 더 댈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 모든 것이 아쉬울 정도의 단점만 없다면.

 

 앞서 말했듯이, 낭자들의 추파는 꽤 많이 받아보았습니다. 집안의 위치상 어려서부터 약혼을 바라는 집안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고 앞 뒤 재지 않고 몸부터 달라드는 여자분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 제가 아무리 속세와 먼 고고한 위치에 있다고는 하지만 남색이라는 것은 현세에서도 좋은 평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쯤은 알고 있습니다. 청룡공자는 그것마저 모두 생각하고 제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인지 궁금하지만…. 저만 허락한다면 이런 잘난 사람을 좋아함으로써 하는 마음 고생정도는 덜어줄 수 있겠지요. 역시, 귀한 이 몸께서 어리고 어린 청룡공자의 마음을 받아주어야 하는 걸까요? 불쌍하고 어리기만 한 사람 하나 구제해 준다 치고 절 희생해야 하나 봅니다.

 

 하…, 이래서 잘난 남자란.

 

 

 

"응. 아저씨 생일이 곧 이라면서요? 누구한테 들었겠어요"

 

 

 

 마침 청룡공자가 보이는 군요. 어서 불쌍한 청룡공자를 구제해 주러 가야겠습니다. 청룡공자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같이 완벽한 남자를 쉬이 얻을 수 가 없을테니까요.

 

 

 

"기대하고 있어요. 나, 엄청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까. 진짜에요. 나, 아저씨가 분명 좋아할 만한 선물을 할 테니까. 푸하, 아저씨는 현우 같지 않네요. 선물은 나에요,라니. 진짜 아저씨 같아. 그런 말을 원해요? 원한다면 해줄 수는 있지만."

 

"청룡공…"

 

"응, 나도. 많이 좋아해요, 아저씨. 얼른 보고 싶어요. 얼른 데리러 와."

 

 

 지금 말을 잘못 알아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를 뭘 어쩐다구요? 아무래도, 알아선 안될 것을 알아버린 것 같습니다. 새로운 고민이 생길 것만 같군요. 이건 꿈일 겁니다. 꿈.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지 않겠어요? 어서, 제가 잘못 들은 것이라 말해주십시오, 낭자들. 지금 제가 들은 것이 제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습니까?

 

 

 

 

 …제 봄은 이렇게 피지도 못 한 채로 져야만 하는 걸까요.

 

 

 

 

 

*

 

가람른 전력....으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애에 서툴러 오만 티를 다내는 가람이와 그걸 오해하는 현우.. 미안.. 미안해 현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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