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타는 버스 안에서 오른쪽 끝자리에 앉아 woowoo

너의 일상을 나 혼자 몰래 훔쳐보곤 해

I can love u love u love u, and I need u need u

Will you be ma boy

 

 

 

 

 

*

 

 

 

 

 

 

 아, 탔다.

 

 소년의 입에서 탄성 같은 한숨이 흘렀다. 소년의 눈은 새빨간 머리를 하곤 교통카드를 찍고 있는 남자에게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는 준비성이 철저한 것인지 버스에 오르기 전부터 카드를 손에 쥐고 있다가 제 차례가 되면 버스기사에게 인사를 건네며 혹여나 남은 자리가 있을까 두리번댄다. 역시나 있을 리가 없는 자리에 작게 한숨을 내쉬곤 버스의 중간쯤, 손잡이를 잡고 이어폰을 낀다. 반복되는 나날 속 늘 같은 행동을 보여주는 남자였지만 소년은 그 짧은 순간들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손잡이를 잡은 남자가 커다란 메탈시계를 찬 손을 가볍게 흔들어 시간을 확인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나서야 소년은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아침이면 해가 쏟아지는 창가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소년이 늘 그 자리를 고수하는 이유는 항상 같은 쪽에 서 있는 남자 때문이었다. 같은 라인에 서 있으면 자신이 그렇게 뚫어지게 주시하는 것이 보일까, 하여 마음 것 쳐다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눈이 시릴 만큼 햇볕이 내리쬐는 창밖을 바라보며 잠시 빼두었던 빨간 이어폰을 다시 끼웠다. 빨간 머리의 남자를 쫓고 나서 홀린 듯 샀던 빨간 이어폰은 새하얀 하복에 톡 튀는 색이었으나 소년은 늘 그 줄을 베베 꼬며 귓가에 흐르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I like it, I like it, I like it,

I like it, I like it,

I like, you.

 

 

 

 음역대가 높아 귀가 아프다는 핑계로 잘 듣지도 않던 여가수의 노래를 들은 것은, 이 시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우연히 걷던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가사는 시끌거리는 한 복판에서도 귓가에 박힐 듯 들려왔고 소년은 그 자리에 멈추어 서서 몇 안 되는 가사를 외우려 애썼다. 노래가 끝나고야 급하게 휴대폰을 켜 가사를 검색하고 그것이 꼭 매일 아침을 기다리는 자신과 같다는 생각을 한 뒤로는 피곤한 등굣길, 소년은 20분이라는 시간을 꽉 채우도록 같은 노래를 들었다. 노래가 두어 번을 반복하고야 신호가 걸려 버스가 멈추었다. 멍하니 밖을 내다보던 소년은 고개를 기지개를 켜는 척 고개를 돌려 남자를 바라보았다.

 

 하얀 셔츠에 까만색 바지. 같은 색의 서류가방과 마냥 불편해 보이는 구두. 딱 봐도 나 직장인이요,하는 남자의 뒷모습은 금요일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지만 묘한 설렘을 느끼게 했다. 아침부터 누구랑 연락을 하는 것인지, 남자는 연신 싱글대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자친구 있나. 아, 여자는 많은 것 같긴 하던데. 그저 휴대폰을 보며 키득거리는 남자를 보는 소년의 머릿속은 많은 갈래의 망상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 다시 출발하는 차에 양 손으로 휴대폰을 만지던 남자가 휘청이었고 그것이 민망했던지 주위를 둘러보는 모습을 보고 소년은 애써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며 숨죽여 웃었다. 크흠, 하는 멋쩍은 기침을 해대며 모른 척을 하는 남자를 머릿속에 새기며 소년은 눈을 감았다.

 

 

 

'…아, 귀찮게.'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하는 버스를 처음 타게 되었던 날은 복장검사가 있던 날이었다. 운동을 하는 학생들이라 하더라도 봐주는 것이 없는 담당선생님 덕에 교문검사가 없을 시간을 계산해 나왔던 날, 소년은 남자를 처음 보게 되었다.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는 살가운 모습과는 다르게 강렬한 붉은 색 머리. 그 묘한 어울림이 눈에 거슬릴 것 같던 순간, 유난히도 해가 좋아 빛이 쏟아지던 앞자리에선 붉은 머리가 반짝반짝 빛이 났었다. 그러나 소년은 그 번쩍거림에는 조금도 흥미가 없었다고 생각했었다. 답지 않게 일찍 일어난 하루였기 때문에 매우 피곤했고, 유일하게 남아있던 자리를 꿰찼더니 햇빛이 쏟아져 내리는 덕에 심통이 나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와 버스의 진동과 차분한 아침 라디오의 DJ의 목소리가 한데 섞인 복잡한 버스 안에서 소년은 눈을 감았고, 귓가로 불분명히 들리는 안내방송에 후다닥 일어나 정신없이 등교를 했다. 평소와 같으면서도 같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야 기억 속에 잔상처럼 남은 붉은 빛이 신경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그 뒤로 소년은 매일 30분을 일찍 일어나는 수고를 자처했다. 첫 날은 복장검사를 피하기 위해서, 둘째 날은 미묘하게 기억에 남은 이유를 알기 위해서, 셋째 날은 관심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넷째 날은…. 하루하루 이유를 대어가며 일찍 버스를 타던 소년은 어느 순간인가부터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야 말았다. 무엇을 듣는지 피식거리며 웃는 얼굴이나, 아침 댓바람부터 누구와 통화하는 건지 나직하게 대답해주는 목소리나, 빛이 반사되어 번쩍거리는 시계를 찬 손목이나, 깔끔하게 다려져 반쯤 접힌 셔츠 때문에 더욱 도드라지는 팔뚝 같은 것들을.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남자였으나 소년은 남자가 좋았다. 이유 없이 향하는 감정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매우 우스운 것이었으나 굳이 앞뒤를 따져가며 원인을 찾지 않아도 결과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소년은 인정하기로 했다.

 

 

 

 

 

 

 

이번역은 농협사거리 입니다. 다음은 시민공원 앞입니다.

 

 

 

 소년은 노래가 멈춘 틈 새로 들리는 안내방송에 흐릿한 눈을 떠 부벼댔다. 농협사거리? 남자가 내리던 역이 어디였더라. 눈 안으로 파고드는 듯 한 빛 아래 잠이 들어 곧바로 돌아오지 않는 시야를 되찾기 위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남자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가 늘 잡고 있는 손잡이는 저와 같은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쥐고 있었다. 벌써 내렸나, 하는 아쉬움에 늘어지게 하품을 해 대며 뻐근한 어깨를 크게 돌렸다. 그 순간 제 팔꿈치에 걸리는 둔탁한 느낌을 느끼며 소년은 옆자리에 앉은 이를 향해 대강 고개를 끄덕였다.

 

 

 

"죄송…,"

 

"청가람, 맞지?"

 

 

 

 제 팔꿈치에 어깨를 부딪친, 옆자리의 붉은 남자는 파란 명찰 위, 새햐앟게 새겨진 소년의 이름을 가리켰다.

 

 

 

"난 주은찬이야."

 

"…!…"

 

"매일, 나 보고 있었지?"

 

 

 

 가람은 그저 눈을 동그랗게 하곤 은찬을 바라보았다. 은찬의 말에 머릿속이 순식간에 엉켰다. 매일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남자가 제 곁자리에서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당황스러운데 그동안 은밀히 그를 쫓았던 사실을 그의 입으로 확인 받고 있었다. 잠이 덜 깨어 꿈인가 싶던 상황이 모두 이해되고 나서야 가람은 귀밑머리를 팔랑대며 얼굴을 붉혀 갔다. 너무 놀라면 비명소리도 나지 않는다고 했던가. 물론 극도의 공포로 놀란 것은 아닐 것이었으나 입을 벙긋대긴 커녕 차마 고개도 끄덕이지 못하는 가람을 보며 은찬은 씨익, 입꼬리를 당겨 웃고는 가람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붙여 속삭였다.

 

 

 

"나도 너 보고 있었는데."

 

 

 

 남자가 고갤 돌릴 때면 가끔 보이던 왼쪽 입가의 점이 입꼬리를 따라 호선을 그렸다. 오로지, 그것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