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굴레차!/은찬가람 | Posted by 윤새벽 2016. 7. 3. 02:50

[은찬가람/찬가람] 여름비

 비가 지독히도 내린다.


'나는 커서 가람이랑 결혼할거야!'


 그것은 작았던 네가 늘 입에 달고 살던 말이기도 했다. 그다지도 해맑게 웃으며 말을 붙여오는 너를, 나는 귀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딜 가도 눈에 띄는 빨간색 머리의, 시끄럽게 말을 붙여오는 옆집 애. 후두둑, 빗방울들이 거세게 창가를 두드렸다. 그 소리가 귓가를 뱅뱅 맴돌았다. 오늘부터 장마니 우산을 챙기라던 엄마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창가를 시끄럽게 때리는 빗방울들을 보고 있자니 꼭 저 소리만큼 이야기를 쏟아 붓던 어린 시절의 네가 떠올랐다. 나이를 물어보면 한 손을 쫘악 펼쳐 대답했던 그때의 우리를.

 너는 옆집에 이사 온 남자아이였다. 저보다 작은 여동생을 데리곤 두 손바닥 가득 흘러넘칠 듯 한 접시를 문 앞에 내밀며 문 틈 사이로 너를 훔쳐보던 나와 눈을 마주쳤던, 늘 웃고 다니던 남자애. 너의 첫인상은 그걸로 끝이었다. 유독 낯을 가리고 모르는 사람과 있는 것을 못 견뎌 하던 어린 시절의 성격 덕에 유치원조차 다니지 않았던 나에게 친구를 하자며 끈질기게 쫓아왔던 징그러운 빨간 머리. 가끔 엄마를 따라 장을 보러 가는 시간을 어떻게 그리 귀신같이 알아채는지 문을 나서는 순간 옆집의 문이 열리고 타다닥, 네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었다.

 그렇게 며칠. 따라오는 것이 좀 덜할까 친구를 하겠다고 고개를 끄덕인 후론 매일 같이 우리 집을 들락거렸었다. 하루는 장난감, 하루는 책, 하루는 게임기. 또래 아이들이라면 껌뻑 죽을 여러 가지 재밌는 것들을 들곤 내 앞에 늘어놓고 이것저것을 가르쳐주기도 했었다. 30평 남짓 되는 집 밖에 모르던 나에게 너는 점점 흥미로운 대상 그 자체가 되었고, 너로 인해 나의 세상이 점점 넓어졌었다. 그렇게, 여느 때처럼 호들갑을 떨다 넘어진 너를 보고 처음 웃었던 날.


'와, 가람아. 너 웃는 거 진짜 예뻐.'

'…뭐라는 거야.'

'나 크면 가람이랑 결혼 할래!'


 엉덩방아를 찧은 엉덩이를 문지르는 것조차 잊고는 부담스러울 만큼 얼굴을 가까이 하여 너는 내게 고백 아닌 고백을 했었다. 사회에서 통념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결혼이라는 의미가 남녀의 결합을 의미하는 것을 알게 되기 전 까지, 너는 줄기차게 나와 결혼을 약속했었다. 내 손을 붙잡고 엄마 앞으로 걸어가 꼭 나와 결혼하겠다며 큰소리를 쳤던 네가, 아주 오랜만에 떠올랐다. 너는 그 일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이젠 그것마저 아주 어린 시절의 추억거리에 지나지 않게 되었지만.

 너는 지독히도 착했다. 누가 너를 놀려대어도, 짓궂게 장난을 쳐대도 너는 늘 유연하게 그 상황을 무마했다. 아래로 어린 동생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타인을 배려하는 것에 대해선 도가 텄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상냥했다. 여자애들은 너의 그런 점이 좋다며 수줍은 편지를 건네기도 했고 친구가 아닌 남자애들이 없었다. 꽤나 못된 아이들도 너의 상냥함에 네 앞에선 착한 아이가 되었지만 나는 네 그 성격이 싫었다. 네 둥근 성격은 나에게 쓸데없는 배려였다.


'얼레리 꼴레리~ 은찬이랑 가람이는 둘 다 남잔데 손잡고 다닌대요!'

'그게 뭐?'

'남자끼리 손 잡는 건 이상한 거야.'

'이상한 거 아냐!'


 내 기억엔, 아마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두어해쯤 지나 들었던 이야기였다. 밑으로 저학년들이 줄줄이 생기는 나이였지만 여전히 남자색, 여자색 따위를 나누고 남자는 로봇, 여자는 인형을 가지고 놀아야 한다는 틀에 서로를 끼워 맞출 나이 이기도 했다. 미약하게 성이라는 것에 눈을 떠가고 사귄다는 의미를 이해하며 여자친구를 만들어 손을 잡고 다니는 아이들이 종종 있기도 할 만큼 이제 막 이성을 알아가는 시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지금이야 같은 성별을 가진 이들이 사랑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알고야 있지만 그 어린 시절엔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 마냥 놀려댔던 아이들이 있었다.


'미안해, 가람아.'

'뭐가?'

'나 때문에 그런 놀림 받아서'


 초등학교 2학년 때 까지였을까. 아직 나이가 두 손을 벗어나기도 전이었던 그 날 이후 너는 입버릇처럼 말하던 나와의 결혼이나, 손을 잡고 등하교 하는 일을 완전히 멈추었다. 그것을 당연하다 시피 생각했던 나에겐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으나, 빌어먹을 만큼 착함으로 똘똘 뭉친 너에겐 나름 큰 트라우마로 자리 잡은 것 같았다. 자신이 했던 행동으로 친구가 놀림을 받았다는게 늘 착한 아이로 살았던 아이에겐 너무나도 큰 일이었던 것 같다. 그 후로도 너는 꽤나 친한 친구들이나 호감을 가지고 있는 대상에게도 절대 가볍게 스킨십을 하지 않았으니까. 사실, 그 때의 나에겐 늘 해왔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놀라웠던 것이지 그 따끈한 손을 다신 잡을 수 없다는 것이 애타지는 않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덜컥 숨에 박힌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앞으로도 쭉 네 온기 따위를 그리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턱을 괴고 있던 오른쪽 손목이 제법 아릿해졌다. 멍하니 비가 만드는 흔적을 바라보고 있다가 찬기가 흘러들자 정신이 들었다. 그래, 그랬었지. 한쪽 벽에 걸린 시계를 흘끔, 바라보았다. 곧 있으면 쉬는 시간의 종이 울릴 시간이었다. 그 뒤로도 지루한 자습시간은 남아있었지만. 다시금 밖을 내어다 보며 옛날의 너를 떠올리려다 문득 네게로 시선을 돌렸다. 꽤 오래 전부터 엎드려 자고 있는 너의 빨간 뒤통수를 시큰둥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에게 있어 그런 표정은 다른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절대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는 표정이나 다름없었다. 팔 저리겠다. 나는 조금만 턱을 괴고 있어도 저린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언제 그리 조용했냐는 듯 교실은 시끌벅적하게 소리로 가득찼고 너는 그 소리에 몸을 움찔이곤 몸을 틀어 나를 향해 돌아누웠다. 옅게 인상을 쓴 그 얼굴이 너무나 생소하다. 네가, 나에게 화낸 적이 있었나.


"주은찬"

"……."

"주, 은찬."

 

 가만히 너를 바라보던 내 벌어진 입술 틈새로 네 이름이 흘러나왔다. 시끌시끌한 아이들의 소리에 섞여 나조차도 제대로 들을 수 없는 목소리로, 나는 그 글자를 좀 더 천천히 발음하였다. 숨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목 바로 아래까지 숨이 막히는 듯 한 그 기분은 너를 볼 때면 나를 늘 따라다녔다. 언제부터인지 모를 갑갑함. 가끔은 울고 싶을 만큼 먹먹한 기분이기도 했다. 나를 잡아주었던 작은 손의 열기가 그다지도 그리운 한기가 들 때면, 늘 그랬다. 다시금 네 이름을 불렀다. 아주 천천히, 숨이 막히지 않을 만큼 느리게. 목 끝까지 찼던 먹먹함이 눈 아래로 타오르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 이마를 책상에 대었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너를 바라보았다. 나는, 너의 이름 세글자만을 가져도 이렇게 가슴이 벅차오르는데.


'넌 누구 사귈 마음 없냐?'

'하하, 그건 갑자기 왜?'

'너 좋다는 애는 하루를 멀다하고 늘어나는데 너는 관심 없어 보여서.'

'괜히 미안한 일 만드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해.'


 쓸데없이 착한 새끼.

 남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너에게 고백한 아이들은 너와 멀어졌다. 모두 네가 천천히 거리를 두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어느 날엔가 어설프게 너를 떠보았을 때도 징그럽게 너다운 대답을 해 와서 나는 그날 이후로 너에게 내 마음을 전하는 것을 포기했다. 분명 제 쪽에서 오해를 하게 만든 것이라며 미안하단 말을 할 것이 너무도 뻔해서, 나는 나를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쓰림을 꾹, 꾹, 눌러 담기로 했다. 당장 싫은 티를 내지는 않겠지만 너는 변할 것이 분명했다.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서로의 집에 드나드는 빈도가 줄어들다, 너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자리마저 다른 이로 채워진다면 나는 너와 함께였던 모든 시간을 후회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쉬는 시간을 끝내는 종이 울렸다. 아이들은 여전히 웅성거렸지만 모두 자리에 앉아 있는 채였다. 점차 소리가 가라앉고,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담임이 반에 들어와 한 소리를 해댔다. 이내 아까와 같은 적막이 교실을 채우고, 빗소리만이 내 귓가를 울렸다. 그 적막 속에서, 이젠 부를 수도 없는 이름을 목 뒤로 삼키곤 조용히 눈을 감았다. 목 뒤를 적시던 먹먹함이 속 아래로 끌어내려왔다. 나는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울 것 같은 마음을 잠재웠다. 숨이, 조금 흔들렸다. 겨우 진정시킨 속을 달래며 눈을 떠 너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너는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한바탕 소란 속에서 깨지도 않고 자는 너는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감은 눈을 한참이나 마주치고 있다, 다시 눈을 감았다. 네가 그리도 깊게 꾸고 있는 꿈 속에서 함께있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