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낭자들. 하하, 네, 요즘 그런 소릴 많이 듣습니다. 얼굴에 고민이 가득한 것 같다구요. 맞습니다. 요즘 큰 고민거리 하나가 생겨서 말이죠. 한두 살 먹은 어린 아이도 아닌데 이런 것을 가지고 고민을 하는 것이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어쩔 수가 없어요. 사람 마음이라는 게 제 맘대로 안 되어 사람마음이라고 하는 것일 테니까요.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유도 이 '사람마음' 때문입니다. 자고로 사신 후계자들이란 속세와 멀어져 자신을 다스리고 다듬어 사신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중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인간들에 마음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는 하지만 신체 건강한 남성으로써 여염집 낭자들의 추파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 일 것입니다. 낭자들의 마음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지는 않는다는 소리입니다. 기를 다스리고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지만 훗날 사신이 된다면 또 다른 사신 후계자를 잉태해 기를 의무 또한 있기 때문에 알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그 상대가 '낭자'가 아닌 점에서 어찌할지를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단 소리입니다. 차라리 고운 한복의 굴곡에 어울리는 참한 낭자라면 고민이 덜 했을 것입니다. 저와 같이 살을 맞대고 몸을 쓰며 자란 남자이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나 매일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이상한 사태는 요 근래에 와서 생긴 일입니다. 모든 시작은,

 

 

 

"야, 현우!"

 

"무슨 일이십니까, 청룡공자"

 

 

 

 청룡공자의 물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련이 없는 시간 동안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TV를 시청하던 한가로운 오후의 어느날이었습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던 그 때에 임금의 앞에 수랏상이 차려지자 얌전히 TV를 시청하고 있던 청룡공자는 제 쪽을 돌아보며 물었습니다.

 

 

 

 "혹시 너네 집에서도 저런거 먹었어?"

 

 ​그 때는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1세기라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한복을 입고, 머리를 올리고, 힘들여 옛스런 말투를 사용하는 것에 연장선인 호기심. 그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속세의 사람들에겐 신기해 보일 것이 분명했고, 실로 그런 질문을 꽤나 들어본적이 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전 솔직히 말했습니다.

 

 

 

"예. 현대의 서양음식이 섞인 상차림 보단 궁중에서 먹던 음식을 즐겨 먹었죠"

 

"신선로나 구절판 뭐 그런거?"

 

"그렇죠. 12첩반상은 기본이었습니다."

 

"집안 식구가 다 그렇게 먹었단 말이야? 그… 너네 형님이라던가"

 

"물론이죠. 오히려 속세의 음식이 더 입에 맞지 않을 정도로요."

 

 

 

 사실, 청룡공자의 멍청한 표정이 보고 싶어 조금의 거짓을 보태었다고는 했지만 이런 결과가 생겨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 날도 제 예상에 빗나가지 않게 입을 떡 벌리며 멍청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청룡공자를 보며 속으로 웃어대었습니다만,

 

 

 

 

 

 

 

"…야 주은찬,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냐?"

 

"…아니…."

 

"근데 이건 다 뭐냐…."

 

"뭘 쳐다봐? 하고 싶어서 한거야. 심심하니까!"

 

 

 

 다음날 아침부터 12첩 반상에 신선로며 구절판, 어선, 미나리강회 등등 집에서도 손이 많이 가 까다로워하던 음식들이 줄줄이 올라와 상다리가 휘어지는 줄 알았지 뭡니까. 이번엔 백호공자와 주작공자의 얼굴이 멍청해질 정도로 갑작스러운 애정표헌이었습니다. 거짓말이 너무했나, 싶을정도로요. 그땐 정말 지난 날 청룡공자가 했던 질문이 아침 수랏상과 겹쳐져 청룡공자가 나에게 마음이 있는건가,하는 생각이 피어올랐습니다. 한참을 그 상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음식에 대해서는 묘하게 자존심이 센 청룡공자를 잘못 건들였나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칭룡공자는 그런 제 생각이 우습다는 듯이 확인사살을 했습니다.

 

 

 

"그… 현우네 집에선, 이런 거 먹었다고 하니까…."

 

"현우 때문에 이걸 다 했다고? 아침부터?"

 

"닥쳐, 이 돼지들아. 주면 먹기나해! 흠, 흠. 그건 그렇고. 맛은 어때, 현우야?"

 

 

 

 이거 초록등에 불이 올라야하는 상황이 아닙니까? 흠, 흠. 속세에선 한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말로 저런 표현을 사용한다고 하던데 말이죠. 뭐, 그거 하나 뿐이라면 제가 설레발을 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그것 외에도 청룡공자의 저를 향한 관심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높아져만 갔습니다. 집에는 또 언제가? 자주 안가?, 그… 집 가면 혼자서 뭐하는데. 형님이랑은 사이 좋아? 등등 저에 대한 관심을 넘어,

 

 

 

"네 생일은 언제야? 너희 가족들 생일은?"

 

 

 

 저의 가족들에게까지 관심을 보이지 뭡니까. 꼭 그런 것 같지 않습니까,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 가족의 생일을 챙긴다거나 남자친구 가족의 조경사를 챙기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물론, 청룡공자가 제 여자친구의 위치였다면 사랑스러워 보였을지도 모르겠으나 아직 제가 마음을 받아준 적도 없는데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청룡공자의 모습을 보자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거죠. 뭐…, 청룡공자도 나쁜 조건은 아닙니다만은.

 

 낭자들은 청룡공자를 가까이서 본 적이 있는지요. 남자라기엔 조금 가는 몸과 선, 무술사로써 몸을 단련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타지 않은 흰 피부, 종갓집 며느리로도 손색이 없을 음식 솜씨와 살림솜씨. 조금 틱틱대고 우위에 서고 싶어하는 성격이나 그 또한 조금 얼러 받아주면 쉽게 마음을 여는 성격까지…. 흠, 흠. 제가 청룡공자를 좋아하는건 절대, 절대 아니지만 청룡공자만의 장점을 대라면 이 말고도 더 댈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 모든 것이 아쉬울 정도의 단점만 없다면.

 

 앞서 말했듯이, 낭자들의 추파는 꽤 많이 받아보았습니다. 집안의 위치상 어려서부터 약혼을 바라는 집안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고 앞 뒤 재지 않고 몸부터 달라드는 여자분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 제가 아무리 속세와 먼 고고한 위치에 있다고는 하지만 남색이라는 것은 현세에서도 좋은 평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쯤은 알고 있습니다. 청룡공자는 그것마저 모두 생각하고 제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인지 궁금하지만…. 저만 허락한다면 이런 잘난 사람을 좋아함으로써 하는 마음 고생정도는 덜어줄 수 있겠지요. 역시, 귀한 이 몸께서 어리고 어린 청룡공자의 마음을 받아주어야 하는 걸까요? 불쌍하고 어리기만 한 사람 하나 구제해 준다 치고 절 희생해야 하나 봅니다.

 

 하…, 이래서 잘난 남자란.

 

 

 

"응. 아저씨 생일이 곧 이라면서요? 누구한테 들었겠어요"

 

 

 

 마침 청룡공자가 보이는 군요. 어서 불쌍한 청룡공자를 구제해 주러 가야겠습니다. 청룡공자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같이 완벽한 남자를 쉬이 얻을 수 가 없을테니까요.

 

 

 

"기대하고 있어요. 나, 엄청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까. 진짜에요. 나, 아저씨가 분명 좋아할 만한 선물을 할 테니까. 푸하, 아저씨는 현우 같지 않네요. 선물은 나에요,라니. 진짜 아저씨 같아. 그런 말을 원해요? 원한다면 해줄 수는 있지만."

 

"청룡공…"

 

"응, 나도. 많이 좋아해요, 아저씨. 얼른 보고 싶어요. 얼른 데리러 와."

 

 

 지금 말을 잘못 알아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를 뭘 어쩐다구요? 아무래도, 알아선 안될 것을 알아버린 것 같습니다. 새로운 고민이 생길 것만 같군요. 이건 꿈일 겁니다. 꿈.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지 않겠어요? 어서, 제가 잘못 들은 것이라 말해주십시오, 낭자들. 지금 제가 들은 것이 제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습니까?

 

 

 

 

 …제 봄은 이렇게 피지도 못 한 채로 져야만 하는 걸까요.

 

 

 

 

 

*

 

가람른 전력....으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애에 서툴러 오만 티를 다내는 가람이와 그걸 오해하는 현우.. 미안.. 미안해 현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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