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굴레차!/etc | Posted by 윤새벽 2015. 1. 23. 16:11

[백청주] 本色 - 上


"너는 화도 안 나냐?"

 나는 주은찬이 무섭다.

"괜찮아"

 녀석이 꽁꽁 싸매고 있는 그 속 안엔, 어떤 모습의 녀석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으니까.

本     色 

 주은찬과는, 함께 한지 어언 8년이 다 되어가는 8년지기 친구다. 조금 후엔 10년, 사신이 되어 함께 간다면 그 햇수를 세릴 수도 없겠지. 하지만 나는 주은찬을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이라곤 남들도 볼 수 있는, 질리도록 착한 녀석의 모습일 뿐이니까. 주의의 사람들보다 조금 더 안다고 할 수 있는 녀석의 모습은, 같은 사신후계자의 길을 걸으며 평범한 인간들에겐 할 수 없는 이야기의 '일면'일 뿐이다. 남들에게 알릴 수 없는 비밀이나 속내가 아닌, 특정한 주제를 이해할 수 있는 녀석에 한한 이야기의 공유일 뿐이란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녀석이 무너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남자 후계자란 이유로 집안 어른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을 때도, 양기가 강해 주술을 다루는 것이 힘들 것이란 말을 들었을 때도, 수백번을 다쳐가며 수련해도 완성이 되지 않는 주술에도 녀석은 그저 묵묵히 입을 다물고만 있었다. 지금 키의 반쯤 될까하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녀석은 늘 비슷한 정도의 서글한 웃음으로 모든 것을 무마했다.

 주은찬은 질리도록 착하다. 주은찬을 아는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녀석의 속 안엔 전혀 다른 녀석이 살고 있다. 나 또한 영원이란 시간동안 주은찬을 마냥 착하기만 한 녀석 중 하나로 알고 있을 뻔 했으나, 나는 그 진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다.

"너는 화도 안 나냐?"

 어린 시절 스치듯 겪었던 녀석에 비추어보자면, 녀석 또한 지독히도 착한 호구는 아니었다. 열 서너살쯤 되었을 때의 일이던가. 나를 만나고도 1~2년의 시간이 흐른 후였지만 여전히 주술 하나를 겨우 익힌 -그것도 보패를 사용해서만-녀석을 두고 주작가는 여전히 말이 많았다. 주은찬이 태어나기 전, 늘상 여자가 많이 태어나는 주작가에선 이례적으로 여자아이들이 태어나지 않았고, 그나마 태어나던 남자아이도 너무 약하거나 금방 죽어버렸다고 했다. 그 후 전신이 붉은 주은찬이 태어나고 나서야 주작가에선 아이들이 하나둘씩 태어났으나 머리가 붉은 여자아이는 태어나지 않았다. 가문 내에서는 아무것도 모를 어린 녀석을 앉혀두고 늘상 말이 많았다고 했다. 주은찬이 진정으로 사신이 되어 인간세계를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해서. 겨우 글을 깨칠 나이부터 녀석은 주술을 배워야 한다며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여자 주작후계자들은 주술을 몸으로 익혀 자유자재로 다루지만 넌 그럴 수 없으니 하고, 하고 또 해야 한다고. 그렇게 보패의 힘을 빌어 겨우 삼매진화를 깨친 11살의 겨울, 녀석은 '이제야 하나를 배울 줄 알았다면 일찍이 죽여버렸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괜찮아. 어른들이 모이면 늘 하는 말인걸…."

 녀석이 했던 무수한 노력을 알던 난, 그 말을 듣고 내 일보다 더 화를 냈지만 녀석은 생각보다 담담했다. 그 말을 내뱉곤 나를 앞서는 녀석의 등을 바라보며 나는 깊은 한숨을 쉬었었다. 저런 호구같이 착한 성격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진지하게 고민을 했던 나날도 있었다. 좋아도, 당황해도, 슬퍼도, 울 것 같아도 녀석은 늘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자릴 피했다.

"너 그러다 홧병으로 죽겠다!"

 나는 녀석의 등을 보며 소리쳤지만 녀석은 그저 눈 앞에 떨어지는 벚꽃잎들을 바라보았다. 방학 중이 아닌 날 녀석이 오는 건, 그렇게 심한 일이 있거나 주술을 좀 더 사용할 수 있게 된 날들 뿐이었다. 물론, 후자는 극히 드물었기 때문에 녀석이 온다는 소릴 들으면 먼저 걱정부터 되었었지만. 씩씩대는 나와 반대로 조용히 벚꽃나무 곁으로 걸어가 나무에 손을 댔다. 쌔,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꽃잎들은 힘없이 떨어졌고 나는 그 장면에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아 녀석이 하는 양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빽건"

"왜"

"나도 인간인데, 화가 날 때가 많아. 특히, 그런 소릴 들을 때면. 내 손은 더럽히기 싫으니 니 스스로 죽어달란 소리랑 뭐가 다르냐고."

 나는 뒤돌아선 주은찬의 표정을 볼 순 없었으나 분명, 슬퍼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선택할 수 없는 운명으로 태어나 수없이 노력해도 끊임없이 부정 받는 느낌은 어떤 것일까. 겨우 12살이 되려는 겨울, 그렇게 어린 생각으로도 주은찬의 상황은 늘 안쓰러웠고 가슴 아파 했었다.

"대신, 그렇게 화가 날 때면 나는 그 분이 가실 때 손을 꼭 잡아드려."

 가슴 아파, 했었다.

"그럼, 내 손에 닿은 거니까, 밀치기만 해도 그런 소릴 하는 사람은 없어질테니."

 녀석은, 그 말을 끝으로 고갤 돌려 날 바라보곤 맑게 웃었다. 보패를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녀석의 귓가가 주술을 부릴 때 처럼 일순 불타오르는 것 같이 보였다. 나는 순간 불어왔던 바람이 왜 그렇게도 싸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바람 앞에서 흔들리다 떨어져 내리는 벚꽃잎들이 모두 불씨로 보였다. 나는 주작이 그렇게나 붉은 존재였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녀석이 가장 처음으로 익힌 주술, 삼매진화. 녀석이 그 주술에 대해 설명하던 때가 떠올랐다. 손에 닿았던 물체가 충격을 받으면 폭발해 버린다고,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조잘대던 녀석의 모습이 녀석의 웃는 얼굴과 겹쳐져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늘 웃기만 해대던 얼굴 안에 감추어진 녀석의 본심은, 그 한마디의 말로 수면위로 얕게 떠올랐다. 그 후, 주은찬을 대하는 내 태도는 묘하게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면, 속을 알 수 없는 그 녀석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어느 정도가 녀석이 생각하는 정도인지, 꿈에도 알 수 없어 무서웠다.

"가람아, 내가 도와줄 거 있어?"

 그렇기 때문에 그 속을 모를 녀석이 내 것을 건드리려 하는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눈을 빛내며 녀석의 행동을 쫓고 있다. 나는 녀석의 웃음이 무엇을 감추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녀석의 본심이 얼만큼 어둡고, 얼만큼 삐뚤어진 것인지는 몰라 무섭기는 하지만 녀석의 웃음을 곧이곧대로 믿어선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래서, 내 것의 곁으로 다가오는 웃음을 마냥 앉아 보고 있을 수가 없다. 아무렇지 않은 듯 어깨에 감아올리는 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 이야기하려는 몸, 내 것을 볼 때마다 웃고 있는 위험한 얼굴까지. 자신을 향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를 내 것은, 이런 내가 괜히 예민하며 타박하지만, 다른 이들을 대할 때와 묘하게 달라지는 그 녀석의 웃음은 그날 벚꽃아래 지어주었던 미소와 닮아있는 것이었다.

"혼자 하는 게 더 맘 편하니까 저리 가있기나 해"

"에이, 그래도 도와주면 빨리 끝날 거 아냐"

"그럼 반찬이나 좀 날라두던가"

"응, 그럴게"

 녀석은 여전히 싱글벙글인 채로 반찬을 옮겨다 날랐다. 내 곁을 지나가던 주은찬은 가만히 서 자신을 바라보는 나를 보곤 웃으며 말했다. 빽건, 너도 도울래? 얼른 가람이가 해준 밥 먹자. 녀석의 사람 좋은 듯 한 웃음은 여전히 입에 걸쳐져 있었으나 나는 사람들의 눈이 없는 곳에서 청룡을 바라보는 주은찬의 미소를 본 적이 있었다. 쳥룡의 뒤를 쫒다 낮게 눈을 내리깔곤 웃는 그 모습을. 그것은 평소의 웃음과는 달랐다. 저 웃음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널 몰라. 그래서 네 웃음의 의미도 몰라. 하지만, 짐작은 가. 내 것을 빼앗지마. 짐승을 닮아 날카로운 감이 말했다. 확증은 없을지라도, 지금 짓는 져 녀석의 웃음은 소유를 원하는 눈빛이라고.

"주은찬"

"응?"

날 바라보는 얼굴은 여전히 웃는 모습이었다.

"내거야"

"뭐가?"

"더 다가가지마. 손도 뻗지 마. 눈에 담지도 마. 내 것에 손을 대는 건, 너라도 용서 못 해"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을 하곤 날 바라보았다. 저 눈빛이 가증스럽다. 나는 착해. 나는 결백해. 너는 이런 날 알고 있잖아. 누가 더 잘못한 것 같아? 늘 착한 내가 잘못하기라도 했을 것 같아?하고 말하는 듯 한 저 눈빛. 녀석은 누구에게나 손가락질을 받는 어린 시절을 겪으며 살아남을 스스로의 방식을 만들었다. 다른 이들의 눈 안에 비취지는 착한 이미지 안에서, 타인의 손으로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몰아세웠다. 자신이 비난하는 방법보다 남의 손으로 자신을 뭉개는 타인을 비난 하는 방법이 더욱 확실하니까. 그렇게 누구에게나 착한 척을 해대며 자길 감추는 모습은 날이 갈수록 더욱 견고해져만 간다. 방심하고 있을 때를 노리지 않으면 평생 모를 철저함으로 녀석은 자신을 숨겼다. 그런 가증스러운 눈빛으로 으르렁대며 이를 내보이는 날 바라본다. 이런 내가 전혀 이해가 되질 않는다는 듯 날 보던 녀석은 눈을 두어번 깜박이고 나서야 웃음을 터뜨린다.

"뭐야. 별거 아니네, 빽건"

 녀석은 웃고는 내 귓가로 다가와 소근거렸다.

"나는 빼앗을 자신이 있어. 넌 지킬 자신이 없나보지?"

 ​

 녀석은 그 말을 남기곤 내 귓가에서 떨어졌다. 가까웠던 거리를 제자리로 돌리며 웃음을 지웠다. 나는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녀석이 숨겨온 진짜 녀석의 모습이 얼굴에 비춰졌다. 나와 눈을 마주하고 있었으나 내리깔아 보는 듯 한 눈빛으로 표정을 굳힌 녀석의 얼굴은, 어쩌면 평생 볼 수 없었을 모습이기도 했다. 완전한 무표정. 하지만 그 안엔 무수한 감정이 들어있었다. 그 안엔 나에 대한 질투, 나를 향한 견제, 청룡에 대한 애증과 소유욕, 내가 먼저 청룡을 가졌다는 것에 대한 열등감과 분노가 한데 섞여 있었다. 이래서 네가 늘 웃었구나. 이 모든 것이 그렇게도 여실히 드러나니까. 나는 그제야 녀석이 짓는 웃음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잠시간의 표정을 다시 감추며, 녀석은 웃었다. 저녁 늦어지면 배고파. 가람이가 기다리겠다. 얼른 가자. 녀석이 웃지 않는 그 순간은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녀석을 드디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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