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굴레차!/은찬가람 | Posted by 윤새벽 2015. 1. 27. 21:01

[은찬가람/찬가람] For a long time

 네가 들어온다. 나는 발걸음으로도 네가 온 것을 알 수 있으나 모른 체 한다. 너는 성큼성큼 내게 다가오고 난 여전히 너와 눈을 마주하지 않는다. 넌 널 바라보지 않는 내 턱을 우악스럽게 붙들고 턱 아래가 아리도록 고갤 움직여 입맞춰온다. 뻔하다. 너는 늘 내 생각머리 안에 있다.

 

 

 

"나 이제 한계에요"

 

 

 

 

 

For a long time

 

 

 

 

 

 

 

 

"친하게 지내렴. 옆집으로 이사 온 동생이래. 형아랑 친하게 지내, 은찬아"

 

 

 

 너와 나의 첫 만남은 그저 흔하디흔한 날들 중 하루였다. 고등학교까지는 가지 않아야겠냐는 눈물 어린 엄마의 부탁에 억지로 학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집에는 이삿짐 정리가 한창이라는 이유로 우리 집에서 잠시 놀고 있던 네가 있었다. 한 대 쥐어박으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울망울망한 눈망울로 내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던 너. 나는 그런 너에게 눈꼽만큼의 관심도 가지지 않은 채로 방으로 들어갔고 너는 문이 닫히는 그 순간까지 눈알이 하나 빠진 토끼인형을 들고 동그란 눈을 빛내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별로 특별하지 않은 기억. 그러나 너에게 그것은 시작이었다고, 어느 날의 너는 말했었다.

 

형아, 나랑 놀아주면 안 돼?

 

형, 오늘은 형네 집에서 자고 갈래.

 

형, 나 형네 회사 근처에 있는 대학 붙었어요. 자주 놀러갈게요.

 

형, 오늘부터 우리 같은 회사 사람이에요.

 

 우습게도, 쌩한 바람이 불던 첫 만남과는 다르게 우리는 꽤 가까운 사이로 자랐다. 4살이라는 나이차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한 번도 학교를 함께한 적은 없었으나 늘 비슷한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며 친형제처럼 지내왔다. 너는 나를 유독 잘 따랐고 나는 너를 진심으로 아꼈다. 크면 꼭 나와 결혼하겠다는 어린 시절, 힘든 일이 있다면 곧장 달려와 위로를 받고 돌아가던 학창시절, 나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라는 대학시절을 보내며 너는 결국 나와 같은 회사에까지 다니게 되었다. 나는 그런 네가 대견스러웠고 같은 부서에서까지 일하게 된 널 보며 아주 많이 기뻐했었다.

 

 

 

"청대리, 내일 저녁 시간 되나"

 

"내일 저녁이요? 저녁을 같이 먹을 사람이 있긴 한데…, 미루죠 뭐. 대신 비싼 거 사주셔야 돼요"

 

"뭐, 니가 원한다면야"

 

 

 

 기뻐했었다.

 

 같은 부서에서 일하게 된 이후로 너는 유독 나를 더 쫓았다. 서로 지내는 곳은 조금 거리가 있었으나 늘 함께 출근을 했고 함께 퇴근을 했다. 매일 함께 식사를 하고 다른 이와 약속을 잡으려 하면 어느새 뒤로 바싹 다가와 저도 끼면 안 되겠냐며 그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처음엔 그저 처음 하는 사회생활에 기댈 곳이 나 뿐이어 그렇겠지,하고 넘겼었으나 사내에서 마저 노골적으로 따라붙는 눈길에 나는 그 묘한 이질감을 모른 체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동기들과 함께 할 때, 의지하는 상사의 곁에 있을 때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로 내 곁의 이들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나 혼자만의 착각이 아니었고 슬쩍슬쩍 다가와 어리광을 가장해 부리는 투정은 단순히 친하다는 표현 이상의 스킨십이었다.

 

 

 

"그럼, 내일 저녁에 뵈요"

 

 

 

 그 묘함을 느끼고 난 후 나는 꽤나 고의적으로 너를 피했고 네가 없다고 판단되는 곳에서만 다른 이들을 만났다. 출근시간도, 퇴근시간도, 밥을 먹거나 다른 이들과 부딪힐 만한 시간이면 너를 교묘히 따돌려 혼자 생활했다. 어려서부터 늘 함께하다시피 한 버릇이 잘못 들어 생긴 집착이라면 교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내가 노골적으로 너를 피해 다녀도 넌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 다른 이에게 따라붙던 시선이 내게 붙은 것을 제외하곤. 그 시선은 안타까움인 것도 같았고 슬픔인 것도 같았으며 조심스러움인 듯도 했다. 어찌되었든 나는 그렇게 너와 거리를 점점 벌려내 갔고 그것은 크게 힘들거나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내가…, 뭐 잘못한 것이 있나요?"

 

 

 

 전적으로, 나에게만.

 

 

 

"왜 자꾸 피해요. 그러지 말아요. 난 그저 형이랑 가까이 있고 싶은 것뿐이에요"

 

"넌 잘못한 거 없어"

 

 

 

 잘못한 게 있다면 네가 그렇게 나에게 집착하도록 내버려 둔 것뿐이겠지. 나는 전처럼 너에게 나의 모든 생각을 털어놓지 않았고 너는 그것에 어떠한 토를 달지 않았다. 그런 널 바라보던 나는 너를 두고 밖을 나섰고 너는 나를 뒤따라오지 않았다. 뒤에서 무어라 중얼대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했다. 단 순간에 사그라들 기묘한 감정이라면 일찍이 잘라내는 것이 필요할테니까. 그렇게 모든 것은 순조로운 듯 했고 나는 아주 오래간만에 네가 아닌 다른 이를 만났다. 함께 저녁을 먹고 웃고 떠들며 그의 차에 타 대로변을 달리다 그의 집으로 향했다. 딱히 거부감은 없었다. 그의 집 아래 주차장, 멈춘 차 안에서 나는 얌전히 그의 손길을 받다가 차에서 내렸고 눈 앞이 번쩍임과 동시에 정신을 잃었다.

 

 

 

"난 분명 경고했어요"

 

 

 

 꿈과 현실의 경계 즈음에서 지겹도록 익숙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너를 간과했구나.

 

 

 

-

 

 

 

 눈은 생각보다 쉽게 뜨였다. 다만, 눈 뜬 세계가 어두웠을 뿐이지. 아무리 눈을 굴려보아도 조그만 빛줄기 하나 눈 앞에 보이지 않았다. 내가 눈을 뜬 것이 맞나? 하는 생각이 수십번 들었다. 시야가 사라진 공포는 생각보다 어마어마했고 눈 주위가 부자연스럽게 조이는 느낌을 느끼고 나서야 눈 앞이 무엇인가로 가려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떠오르는 단편적인 기억에 나는 마른 침을 삼키며 현재의 내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이 공간이 어떤 곳인지는 가늠할 수 없었으나 등을 바로 댄 곳이 푹신거리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침대 위에 팔이 묶인 채 기절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깼어요?"

 

 

 

 상태를 자각하니 몰아치는 불편함에 바르작 댄 것을 알아챈 것인지 가까이에서 네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순간 숨을 내쉬는 것마저 잊었고 그런 나를 보며 너는 낮게 웃었다. 옆구리 부근이 푹 가라앉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네 손이 내 뺨에 닿았고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가려진 눈이었지만 네가 날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지 선명하게 그려졌다. 상냥한 체 하는 미소를 걸치곤 살짝 내리깐 눈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소중한 것을 다루기라도 하는 듯 살살 쓸어대는 뺨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을 느끼며 나는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내 손을 피하고 싶어요?"

 

"……."

 

"대답해"

 

 

 

 언제 가까이 다가온 것인지 말을 토할 때 마다 뱉어지는 숨이 바로 곁에서 느껴졌다. 나는 그 소름끼치는 감각에 몸을 잘게 떨었고 넌 그 새를 참지 못하고 귓가를 잘근거리며 씹어대었다. 나는 그런 네 행동에 온 몸이 벌벌 떨렸다. 천천히, 그러나 배려는 없는 정도의 세기로 너는 내 귓가를 짓씹었다. 아무리 이를 악물고 참아내어도 이가 귀 끝에 박힐 때 마다 소리가 새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꽉 쥔 주먹이 덜덜 떨릴 때쯤이야 네가 귓가를 씹던 입을 때고 속삭였다.

 

 

 

"내 말이 우습지? 아님, 아직도 모른다고 잡아 땔 거야?"

 

"너…, 나한테 왜이래"

 

"아직도 그러네. 그럼 확실히 가르쳐 줄게."

 

 

 

 너는 코웃음을 치며 내 위로 올라탔다. 나는 묶인 손으로나마 널 밀어내려 보이지 않는 눈 앞을 마구 내려치고 발버둥을 쳐댔으나 두어번 손짓을 하자마자 네 손에 묶인 손목이 틀어올려져 움직일 수 조차 없게 되었으며 발버둥 대는 다리는 허리에 올라와 앉은 너에 널 떨어뜨려 놓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네 앞에서 씩씩대며 분을 삭였고 너는 그런 날 가만히 두더니 한마디를 할 뿐이었다. 이제 끝이에요? 나는 그에 팔에 다시 힘을 주었으나 곧바로 목을 죄어오는 손에 뱉어내려던 숨은 다시 목 뒤로 넘어갔다. 목의 양 옆을 누르며 내게 가까이 다가온 너는 스치는 코가 닿을 정도로 다가와 있었다. 나는 놀라 숨을 들이쉬었지만 네 손아래 반쯤 막힌 기도에 색색대며 넘어가는 공기는 충분한 숨을 쉬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머리에 피가 잔뜩 몰리는 느낌에 더는 어두워질 수도 없는 눈앞이 더욱 내려앉는 환상을 보았다. 녀석의 손아래에 놓인 두 맥이 막힌 길 앞에서 펄떡펄떡 뛰어댔으나 조금의 양보도 없는 손아귀 힘에 나는 정신이 아득해져가는 중에도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머리에 발버둥을 쳤다. 움직이지 않는 팔에 가득 힘을 주어 몸을 비틀고 네게 닿지 않는 다리를 침대로 마구 내리 꽂았다. 죽음이 온 몸에 스미는 기분이었다.

 

 

 

"어때, 죽을 것 같아? 숨은 쉬어지는데도 미칠 것 같지. 난 니 앞에서 늘 이래"

 

"윽…, 으븝, 놔, 놔줘, 학, 주은찬…!"

 

"다른 새끼랑 노닥거릴 니 생각만 하면 꼭지가 돌아서 이렇게 앞에 보이는 게 없어"

 

 

 

 너에게 내뱉는 내 목소리는 거친 숨소리와 섞여 곧 죽음을 앞둔 사람의 것 같았다. 더욱더 강하게 눌러오는 네 손아래에서 나는 더 거세게 발버둥을 쳐댔고 두개골을 조여오는 듯 한 느낌에 나는 두 주먹을 억세게 쥐었다. 죽는다, 죽을 것이다. 불과 몇 초 안에 나는 죽는다. 터져나갈 듯 한 감각 새로 드는 생각은 그것뿐이었고 벌어져 숨을 잔뜩 들이마시는 입이 막아지자 나는 온 몸에 힘을 풀고 너를 받아들였다. 입안으로 밀려들어오는 혀에 나는 그것이라도 부여잡고 살려달라 발악을 해댔다. 여전히 붙잡혀 있는 두 팔을 내려 네 목을 끌어안고 조금이라도 더 널 빨아들이고 끌어당겨 네 입안의 공기를 모두 머금었다. 피가 돌지 않아 저릿저릿한 혀 끝이 너와 닿을 때 마다 온 몸에 전율이 올랐다. 하지만 나는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이렇게 나만 보면 좀 좋아. 앞으로도 이렇게 나한테만 매달려요."

 

 

 

 너는 그런 날 비웃으며 입을 떼었고 죽음의 문 앞에까지 데려다 준 손을 떼었다. 학, 하는 소리와 함께 몸 안으로 밀려든 공기는 코 앞에서 몰린 피가 몸의 구석구석을 돎과 동시에 나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의식이 하나하나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툭, 툭, 툭. 해방된 손 아래에서 점차적으로 사그라드는 괴로움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감각과 매우 닮아있는 것이었다. 너는 손을 뻗어 내 눈을 가리던 것을 풀어주었고 칠흑같은 어둠 위로 순간 쏟아져 내리는 형광등의 빛에 나는 가쁘게 숨을 내쉬며 눈을 꽉 내리 감았다 서서히 떴다. 눈이 아프도록 비추는 불빛을 뒤로 내 위에 선 네 모습을 보며 나는 온 몸이 아릿한 쾌감을 느꼈다.

 

 

 

"사랑해요. 부디 나를 자극하지 말아요. 죽여버리기 전에."

 

 

 

 나는 그 말을 뒤로 다시 눈을 감았다. 온전히 힘이 풀린 탓이었다. 전신이 저릿한 이 감각은 너무도 오랜만의 것이었다. 누군가 내게 절절히 매달려 사랑을 갈구할 때의 우월감, 그리고 그 사이로 피어오르는 쾌감. 그것은 어설픈 감정을 가진 이가 절대로 줄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오랜 시간 너를 쥐고, 흔들고, 달래며 원하는 집착을 얻었다. 물론 넌 몰라야 할 일이지만. 널 그렇게 몰아세우는데 아주 많은 시간을 쏟은 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아, 앞으로도 날 이렇게 필사적으로 사랑해줘. 나에게 이렇게 매달려줘. 집착해줘. 나는 필사적으로 너에게서 멀어지며 네 사랑을 시험할 테니.

 

 

 

 

 

 

 

 

*

 

가람이와 은찬이가 느꼈던 감각이 궁금하시다면 숨 참고 다시 읽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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