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낭자들. 하하, 네, 요즘 그런 소릴 많이 듣습니다. 얼굴에 고민이 가득한 것 같다구요. 맞습니다. 요즘 큰 고민거리 하나가 생겨서 말이죠. 한두 살 먹은 어린 아이도 아닌데 이런 것을 가지고 고민을 하는 것이 우스워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어쩔 수가 없어요. 사람 마음이라는 게 제 맘대로 안 되어 사람마음이라고 하는 것일 테니까요.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유도 이 '사람마음' 때문입니다. 자고로 사신 후계자들이란 속세와 멀어져 자신을 다스리고 다듬어 사신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중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인간들에 마음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고는 하지만 신체 건강한 남성으로써 여염집 낭자들의 추파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은 거짓말 일 것입니다. 낭자들의 마음에 대처하는 방법을 모르지는 않는다는 소리입니다. 기를 다스리고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지만 훗날 사신이 된다면 또 다른 사신 후계자를 잉태해 기를 의무 또한 있기 때문에 알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그 상대가 '낭자'가 아닌 점에서 어찌할지를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단 소리입니다. 차라리 고운 한복의 굴곡에 어울리는 참한 낭자라면 고민이 덜 했을 것입니다. 저와 같이 살을 맞대고 몸을 쓰며 자란 남자이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나 매일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이상한 사태는 요 근래에 와서 생긴 일입니다. 모든 시작은,

 

 

 

"야, 현우!"

 

"무슨 일이십니까, 청룡공자"

 

 

 

 청룡공자의 물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련이 없는 시간 동안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TV를 시청하던 한가로운 오후의 어느날이었습니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던 그 때에 임금의 앞에 수랏상이 차려지자 얌전히 TV를 시청하고 있던 청룡공자는 제 쪽을 돌아보며 물었습니다.

 

 

 

 "혹시 너네 집에서도 저런거 먹었어?"

 

 ​그 때는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1세기라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한복을 입고, 머리를 올리고, 힘들여 옛스런 말투를 사용하는 것에 연장선인 호기심. 그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속세의 사람들에겐 신기해 보일 것이 분명했고, 실로 그런 질문을 꽤나 들어본적이 있기 때문이었죠. 그래서 전 솔직히 말했습니다.

 

 

 

"예. 현대의 서양음식이 섞인 상차림 보단 궁중에서 먹던 음식을 즐겨 먹었죠"

 

"신선로나 구절판 뭐 그런거?"

 

"그렇죠. 12첩반상은 기본이었습니다."

 

"집안 식구가 다 그렇게 먹었단 말이야? 그… 너네 형님이라던가"

 

"물론이죠. 오히려 속세의 음식이 더 입에 맞지 않을 정도로요."

 

 

 

 사실, 청룡공자의 멍청한 표정이 보고 싶어 조금의 거짓을 보태었다고는 했지만 이런 결과가 생겨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 날도 제 예상에 빗나가지 않게 입을 떡 벌리며 멍청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청룡공자를 보며 속으로 웃어대었습니다만,

 

 

 

 

 

 

 

"…야 주은찬,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냐?"

 

"…아니…."

 

"근데 이건 다 뭐냐…."

 

"뭘 쳐다봐? 하고 싶어서 한거야. 심심하니까!"

 

 

 

 다음날 아침부터 12첩 반상에 신선로며 구절판, 어선, 미나리강회 등등 집에서도 손이 많이 가 까다로워하던 음식들이 줄줄이 올라와 상다리가 휘어지는 줄 알았지 뭡니까. 이번엔 백호공자와 주작공자의 얼굴이 멍청해질 정도로 갑작스러운 애정표헌이었습니다. 거짓말이 너무했나, 싶을정도로요. 그땐 정말 지난 날 청룡공자가 했던 질문이 아침 수랏상과 겹쳐져 청룡공자가 나에게 마음이 있는건가,하는 생각이 피어올랐습니다. 한참을 그 상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음식에 대해서는 묘하게 자존심이 센 청룡공자를 잘못 건들였나보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칭룡공자는 그런 제 생각이 우습다는 듯이 확인사살을 했습니다.

 

 

 

"그… 현우네 집에선, 이런 거 먹었다고 하니까…."

 

"현우 때문에 이걸 다 했다고? 아침부터?"

 

"닥쳐, 이 돼지들아. 주면 먹기나해! 흠, 흠. 그건 그렇고. 맛은 어때, 현우야?"

 

 

 

 이거 초록등에 불이 올라야하는 상황이 아닙니까? 흠, 흠. 속세에선 한 사람에게 마음이 있다는 말로 저런 표현을 사용한다고 하던데 말이죠. 뭐, 그거 하나 뿐이라면 제가 설레발을 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그것 외에도 청룡공자의 저를 향한 관심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높아져만 갔습니다. 집에는 또 언제가? 자주 안가?, 그… 집 가면 혼자서 뭐하는데. 형님이랑은 사이 좋아? 등등 저에 대한 관심을 넘어,

 

 

 

"네 생일은 언제야? 너희 가족들 생일은?"

 

 

 

 저의 가족들에게까지 관심을 보이지 뭡니까. 꼭 그런 것 같지 않습니까, 여자친구가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어 가족의 생일을 챙긴다거나 남자친구 가족의 조경사를 챙기는 그런 모습 말입니다. 물론, 청룡공자가 제 여자친구의 위치였다면 사랑스러워 보였을지도 모르겠으나 아직 제가 마음을 받아준 적도 없는데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청룡공자의 모습을 보자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거죠. 뭐…, 청룡공자도 나쁜 조건은 아닙니다만은.

 

 낭자들은 청룡공자를 가까이서 본 적이 있는지요. 남자라기엔 조금 가는 몸과 선, 무술사로써 몸을 단련해 왔는데도 불구하고 타지 않은 흰 피부, 종갓집 며느리로도 손색이 없을 음식 솜씨와 살림솜씨. 조금 틱틱대고 우위에 서고 싶어하는 성격이나 그 또한 조금 얼러 받아주면 쉽게 마음을 여는 성격까지…. 흠, 흠. 제가 청룡공자를 좋아하는건 절대, 절대 아니지만 청룡공자만의 장점을 대라면 이 말고도 더 댈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 모든 것이 아쉬울 정도의 단점만 없다면.

 

 앞서 말했듯이, 낭자들의 추파는 꽤 많이 받아보았습니다. 집안의 위치상 어려서부터 약혼을 바라는 집안이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였고 앞 뒤 재지 않고 몸부터 달라드는 여자분들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요. 제가 아무리 속세와 먼 고고한 위치에 있다고는 하지만 남색이라는 것은 현세에서도 좋은 평판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쯤은 알고 있습니다. 청룡공자는 그것마저 모두 생각하고 제게 마음을 표현하는 것인지 궁금하지만…. 저만 허락한다면 이런 잘난 사람을 좋아함으로써 하는 마음 고생정도는 덜어줄 수 있겠지요. 역시, 귀한 이 몸께서 어리고 어린 청룡공자의 마음을 받아주어야 하는 걸까요? 불쌍하고 어리기만 한 사람 하나 구제해 준다 치고 절 희생해야 하나 봅니다.

 

 하…, 이래서 잘난 남자란.

 

 

 

"응. 아저씨 생일이 곧 이라면서요? 누구한테 들었겠어요"

 

 

 

 마침 청룡공자가 보이는 군요. 어서 불쌍한 청룡공자를 구제해 주러 가야겠습니다. 청룡공자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같이 완벽한 남자를 쉬이 얻을 수 가 없을테니까요.

 

 

 

"기대하고 있어요. 나, 엄청 열심히 준비하고 있으니까. 진짜에요. 나, 아저씨가 분명 좋아할 만한 선물을 할 테니까. 푸하, 아저씨는 현우 같지 않네요. 선물은 나에요,라니. 진짜 아저씨 같아. 그런 말을 원해요? 원한다면 해줄 수는 있지만."

 

"청룡공…"

 

"응, 나도. 많이 좋아해요, 아저씨. 얼른 보고 싶어요. 얼른 데리러 와."

 

 

 지금 말을 잘못 알아듣고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를 뭘 어쩐다구요? 아무래도, 알아선 안될 것을 알아버린 것 같습니다. 새로운 고민이 생길 것만 같군요. 이건 꿈일 겁니다. 꿈.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지 않겠어요? 어서, 제가 잘못 들은 것이라 말해주십시오, 낭자들. 지금 제가 들은 것이 제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습니까?

 

 

 

 

 …제 봄은 이렇게 피지도 못 한 채로 져야만 하는 걸까요.

 

 

 

 

 

*

 

가람른 전력....으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애에 서툴러 오만 티를 다내는 가람이와 그걸 오해하는 현우.. 미안.. 미안해 현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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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건가람/건가람] 주술


"뭐야, 청룡. 불도 안 켜고…."

 

"불 켜지마!"

 

 

 

 단순한 투정이라고 생각했다. 또 뭐가 그리 서운해서 불까지 다 꺼두고 방 한 구석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는지. 나는 작게 한 숨을 내쉬며 불을 켜려 했으나 잔뜩 날이 선 목소리로 불을 켜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는 통에 스위치에 가져다댄 손을 내렸다. 녀석은 방 안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에 이불을 겹겹이 뒤집어쓰고는 몸을 둥글게 말고 있었다. 엄마에게 잔뜩 혼이 난 아이가 설움에 콕 박혀있는 모습과도 비슷해 보였다. 나는 청룡에게 다가가며 골똘히 머리를 굴렸다. 내가 뭐 잘못한 일이라도 있나?

 

 딱히 걸리는 것은 없었다. 오늘도 지극히 평소와 같았다. 다른 점이 있었다면 휴일이어서 모두가 중앙에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평일에 못잔 잠을 몰아 잔다고 실컷 늦잠을 자고 아침 겸 점심을 먹었었다. 밥을 먹은 뒤엔 수련이나 하자 싶어서 녀석을 제외한 둘을 불러 대련을 하자고 했다. 청룡은 설거지를 마치곤 구경이나 하겠다며 마루에 앉아 우릴 바라봤다. 한참을 현무 녀석과 몸을 부딪치고 있었는데 매화장 한 켠에서 개와 씨름을 하던 주은찬이 녀석을 불러내 새 주술을 연마했으니 한 번만 써보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나나 현무 녀석도 있었으나 굳이 청룡을 끌어내 매화장에 세운 주은찬이 뭐라뭐라 주문을 외워댔으나 결과는 꽝. 머리를 긁적이며 '멍걸이한테는 됐었는데….'하는 주은찬을 바라보며 청룡은 니가 그럴 줄 알았다며 땍땍댔다. 그게 끝이었다. 정말, 그게 끝이었다.

 

 뭘 알아야 다독여주던가 하지. 나는 머리를 벅벅 긁으며 둥그렇게 솟은 이불더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앞에 바짝 붙은 내 기척을 느꼈는지 청룡은 이불을 더 꽉 싸매곤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머리로 추정되는 가장 솟은 부분에 손을 올려두곤 가볍게 쓰다듬었다. 내 손이 머리에 닿을 때 마다 녀석은 눈에 띄게 움찔댔다. 왜. 왜 그러는데, 청룡. 나는 딱히 다정한 편은 아니었지만 늘 나보다 굴곡이 많은 청룡의 감정을 받아주려면 마음정도는 너그러워야 했다. 얼마나 머리를 토닥였을까 여전히 반응이 없는 청룡에 슬슬 화가 치밀어 오르려 하는데 이불이 잘게 떨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나는 얕게 인상을 쓰곤 이불더미를 바라봤다. 춥나? 감기? 나는 청룡의 발치에 있는 이불을 집어 들추려했으나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며 더 꽁꽁 숨어버리는 녀석의 행동에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이렇게 꽁꽁 싸매고 있으면 내가 뭘 알겠냐고. 이 어두운 방에서 잘게 떨리는 이불 끝을 눈치 챈 것만으로도 내가 대견스러울 지경인데. 나는 일단 청룡에게서 손을 떼곤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점점 더 크게 떨려오는 몸에 소리를 죽이고 있자니 쌕쌕대는 숨소리도 들렸다. 아픈 게 맞는 거 같은데. 나는 녀석이 방심한 틈을 타 이불을 휙, 걷어 올렸다.

 

 

 

"윽, 싫…."

 

"너 왜 그러는데. 어디 아파?"

 

 

 

 이불을 벗겨내긴 했으나 어둑한 방에 청룡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좀 당황한 듯 한 표정인가. 화난건가. 아님 울고 있었나? 일단 아픈 건 맞는 듯 녀석에게 가까워진 팔에 열기가 닿고 있었고 쌕쌕대는 숨소리가 좀 더 크게 방을 채워 나갔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던가. 아님 누워있지 이불이란 이불은 다 뒤집어쓰고 구석에 기대 앉아 있을 건 뭐야. 나는 당최 분간이 되지 않는 그 얼굴을 자세히 보려 눈을 가늘게 뜰 참이었다.

 

 

 

"나, 나 좀 어떻게 해줘봐, 백건."

 

 

 

 애닳는 목소리로 내게 안겨오는 청룡만 아니었다면.

 

 

 

"뭐, 너, 뭐, 뭐야. 너 왜 그래?"

 

 

 

 나는 매우 당황했다. 매우, 아주, 많이, 엄청! 다짜고짜 내 목을 끌어안고 품에 안겨오는 청룡의 몸은 열이 오르다 못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빛이 있었다면 젖어버린 흰색 반팔이 녀석을 오롯이 비칠 것 같았다. 나는 한 손으론 안겨오는 녀석의 허리를 감아 안고 다른 손으로 이마에 손을 댔다. 열은 없었다. 몸에 뜨끈한 기운이 돌긴 했으나 짚은 이마엔 열이 없었다. 식은땀에 잔뜩 절은 머리칼이 손 끝에 걸려왔다. 나는 이상함을 느끼며 뺨이며 드러난 팔뚝에 손을 댔다. 감기에 걸려 뜨겁게 오르는 열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그리고…. 몸에 손을 댈 때 마다 자신의 몸을 문질러 오며 신음하는 청룡은, 뭔가 이상해도 단단히 이상했다. 제대로 힘도 들어가지 않는지 목을 끌어 안아올 때 스쳤던 손이 젖어있었다. 내 다리 사이를 차지한 엉덩이가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내 허벅지 위에 앉아있는 청룡의 허벅지와 종아리가 내 허벅지를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결정적으로, 내 아랫배에 닿아 문질러대는 청룡의 아랫배가 질척거리고 있었다. 저쪽에선 애가 타 죽으려 하는 상황이었지만 내 쪽에선 이렇게 하나하나 짚어내지 않으면 무슨 상황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을 상황이었다.

 

 

 

'손 떼라?'

 

 

 

 그도 그럴 것이, 청룡은 유난히 스킨십을 싫어했다. 어찌저찌 사귀게 된 사이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내가 녀석에게 닿을 수 있는 범위는 지극히 적었다. 가볍게 입을 맞추고 나면 녀석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고 밥 하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다 끌어안으면 달라붙지 말라며 떼어내기 일수였다. 은근슬쩍 손을 잡으면 사람들이 본다며 털어냈고 겨우겨우 진하게 입을 얽다가도 손이 몸을 쓸어대면 마주대던 입조차 떼곤 정색에 정색을 했다. 와, 이렇게 말하니까 나 되게 불쌍하네. 뭐 아무튼, 가끔 살살대며 하는 말이나 스킨십을 하고 난 뒤 붉어지는 얼굴을 보며 날 좋아하긴 하는구나,하고 안심할 정도로 녀석은 몸과 몸이 닿는 것을 싫어했다.

 

 

 

'청룡후계자는 인간이 아니라 용족이라고 하더라. 겉모습만 인간이라고.'

 

 

 

 주은찬은 청룡이 용족이라고 했으며 한동안 이곳에서 말썽을 부리던 신선도 겉모습만이 인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감정에 남들보다 무뎌보이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몸을 마주대는 것을 싫어하는 것도 그저 서툰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를 위로했다. 녀석도, 나도 처음이니까. 첫 사랑이고, 첫 연애니까 그저 받아들이고 표현하는게 어색할 뿐이라고 늘 나를 다독였다. 그런데….

 

 

 

"흣, 아까 주은찬이 주술, 걸어보겠다고 한 다음부터어…, 몰라. 얼른, 응, 얼른 백건…."

 

 

 

 아무리 들어도 귓가를 의심하게 된다. 아무리 허벅지 위에서 가쁘게 몸이 닿아도 믿어지지 않는다. 꿈에서나 나올법한, 아니 꿈에서 조차 제대로 허락되지 않았던-본 적이 없었으니- 청룡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자 나는 내가 주술에 걸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멍하니 움직이지 않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청룡은 귓가에 애가 끓는 신음을 흘리며 목에 걸고 있던 손을 풀어 아래로 가져갔다. 나는 나를 쥐는 녀석의 작은 손에 나는 입술을 깨물었고 녀석은 나에게 더 닿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옷 위로 닿는 둘이었으나 녀석은 이미 젖을대로 젖어버려 두 옷이 마주댄 촉감이 아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주은찬이 주술을 걸겠다고 한 다음부터면 주술 때문인가? 어떻게 주술이 잘 못 걸려야 이렇게 되는거야. 일단 주은찬한테 가 봐야 하나. 나는 억지로 생각을 이어나가려 했으나 청룡이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머리가 하얗게 비어가는 것을 느껴야 했다. 나를 쥐던 손이 내 가슴께에 와 뜨겁게 쓸어대고, 어깨에 기댄 이마가 목을 향하여 뜨거운 숨을 토할 때에,

 

 

 

 

"백건, 백건…, 으읏, 아, 백거언…."

 

"청룡"

 

"제발…, 응? 제발"

 

"지금부턴 빼도 안 봐줘."

 

 

 

 더 이상 생각 하는 것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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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찬가람/찬가람] 첫사랑

"뭐야, 주은찬. 또 나 혼자가?"

 

"미안. 빽건네 끝났을거니까 빽건이랑 같이 가. 응?"

 

 그녀석이랑 가기 싫은데…. 네 볼멘소리에도 나는 그저 멋쩍게 웃으며 너를 달래 보내었다. 요새, 나는 널 노골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아, 맞다. 도서관 갔어야 했는데. 선생님이 아까 불렀는데 교무실 갔다 오는걸 잊어버렸네? 유나비한테 빌린 교과서 가져다 줘야 해서. 미안, 먼저가. 그런 변명거리들이 다 어디서 나왔나 싶을 정도로 셀 수 없는 거짓말들이 널 혼자 돌려보내었다. 늘 함께 하던 하교길이 혼자가 되어 너는 영 쓸쓸한 듯 싶었지만, 조금 섭섭해 하는 네 표정을 읽어내면서도 함께 하교할 수 없는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좋아해'

 

지독한 열병을 앓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첫    사    랑

 

 

 

 

 

 

 언제부터였느냐고 물으면 대답은 할 수 없다, 하지만 굳이 대답하라면 널 처음 봤던 그 순간부터,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흔한 연애소설 속 주인공처럼, 너는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우리 학교로 전학을 온 전학생이었다. 학기의 시작도 아닌 어중간한 시점에 전학을 오게 되어 살짝은 굳은 표정으로 '청가람이야'라고 말하던 너는, 그저 흔히 보아왔던 전학생 중 한명에 지나지 않았다. 지나지 않아야했다. 하지만 내 눈엔 네가 박혀 들어온 듯 눈 가에서 아른 거리는 것이 멈추질 않았다. 네가 네 이름을 얘기하고, 눈치를 보다 잘부탁한다며 우물쭈물 말을 하고, 교실 뒤쪽의 어느 곳에 가방을 두고 앉을 때 까지 나는 그저 네가 서 있던 곳에서 눈을 땔 수 가 없었다. 이상하기도 하지. 조금 특이한 것이라면 눈이 붉다는 것. 그것 밖에 없었는데도 그 긴장한 듯 한 붉은 눈이, 아이들의 눈이 모두 너에게로 향한 것이 부담스러운 듯 살짝 깨물었던 그 입술이, 교탁 옆에 살짝 가려진 그늘 아래로 애꿎은 살만 찝어대었던 그 손가락이 오롯이 그 자리에 남아서, 나는 그 날 수업을 멍한 기분으로 날려 보내야 했다. 너를 좋아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기 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야! 주은찬!"

"어…. 가, 가람아"

 

 혹여나 걸음이 느린 네가 정문을 벗어나지 못했을까 부러 후문으로 왔건만, 이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다는 듯 넌 후문 한 켠에 삐딱하게 기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 망했다. 나는 또 멋쩍게 웃으며 뛰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고 네 쪽으로 걸어갔다.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알 수 없는 이유 또한 이것과 같았다. '아, 내가 청가람을 좋아하는구나.'하는 자각이 없었어도 몸은 착실하게 반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널 처음 봤던 그 날부터 너와 친해지고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기까지 머리는 모른채 해왔을지라도 내 몸은 널 눈에 담고, 네 목소리만을 찾고 널 보고서야만 쿵쾅대었었다.

"빽건 먼저 가버리고 없대서 기다렸어. 같이 가. 할 말도 있고."

"아, 응. 같이 가자…."

 

 나는 내 입으로 말하기는 좀 민망하지만, 내 감정을 잘 감추는 편이었다. 굳이 단어로 표현하자면 포커페이스? 남들은 멍청하게 웃어대는 게 속이 훤이 보인다고 하지만 그 웃음이 내 감정을 감추기 위해 만들어진 웃음이라는 것을 모르고 하는 말일 터였다. 그렇게 나는 내 속마음을 잘 숨기는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청가람, 네 앞에만 서면 마음이 새 어쩔 줄을 모르는 어린애가 되어갔다. 네 곁에만 가면 웃음이 났다. 웃기거나 재미있는 일이 있지 않아도, 네 얼굴만 보고도 웃음이 났다. 너는 그것을 보고 왜 바보같이 웃으면서 오냐고 타박을 주었지만 나는 네 눈이 나를 향해만 있어도 가슴이 간질거려 웃음이 났다.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다가도 네가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속이 쓰릴 때처럼 가슴 한구석이 아리고, 무겁고, 손으로 쥐어 짜내는 것처럼 빠듯해 와도 그것은 모두 설렘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네가 웃어주면, 손을 뻗어 내 몸에 닿아오면 그 날은 온종일 네 생각에 매달려 무슨 생각을 하냐는 타박을 들을 정도로 나를 감출 수가 없었다.

"주은찬"

"…응?"

"너, 나한테 잘못한 거 있어?"

 …하하. 그럴 리가. 나는 또 멋쩍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수습해야 했다. 내가 널 피하고 있다는 걸, 너도 알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에 또 속이 쿵쾅댔다. 조금만 정신을 놓으면 그대로 쓰러질 것만 같이 심장이 뛰었다. 이 얘길 잘 받아쳐야 한다는 생각이 수십번은 들었으나 대꾸할 말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네 말 한마디에도 한 없이 약해지는데 앞으로 얼만큼 네 옆에서 널 속이며 지낼 수 있을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내 어색한 대답에도 넌 날 그저 빤히 바라보다 알았어.하며 넘어가 주었다. 묘하게 감이 좋은 너로썬 내가 이상하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지는 심장소리를 애써 감추려 헛기침을 해 대었다. 조금만 더 커지면 내 곁에 바짝 붙은 네가 다 들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고보니, 최근에 들어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둘의 사이가 가까웠다. 네 곁에 붙어있을 때면 옅게 나던 너만의 향이 났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생각을 할 때면 늘 오물거리던 입도 보였다. 조금만 곁으로 다가가면 숨소리도 들릴 것만 같았다. 나는 또 그새 숨이 차올라 숨이라도 크게 들이쉬고 싶었으나 그를 또 이상하게 생각할 널 생각하면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결국….

"윽, 켁, 켁…!"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숨을 참다 목이 매어 기침까지 실컷하고 나서야 제대로 숨을 쉬게 되었다. 갑작스런 기침에 넌 놀라 내 등을 두드려주러 다가왔지만 나는 그렇게라도 너와 닿는 것이 부담스러워 손을 밀어내고 가슴을 두드렸다. 그 때의 네 표정을 볼 새는 없었지만 아마….

"…망했다…."

 나는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등신같아…, 주은찬."

 나는 내 머리를 미친 듯이 때리려다 말았다. 이런다고 아까 지나쳤던 시간이 되돌아오지는 않을테니. 누굴 좋아한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누구와 사겨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벅차 몸이 닿는 지경이 되면 머리가 하얘지는 건, 손을 잡고 입을 맞추었던 지난날 어떤 누구 앞에서도 일어나지 않았던 현상이었다. 그에 비하면 애정이 가득한 행동은 전혀 하지 않았음에도 그보다 더 한 감정이 휘몰아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 몰라.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이대로 영원히 잠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피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애를 끓이고 있는 것도 싫었고, 솔직하게 네가 좋다고 말하기엔….

"그건 절대 안 돼…."

 널 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감정이란건 언젠가는 무뎌진다는 말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속이 다 타도록 좋아하더라도 언젠가는, 얼만큼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그 크기가 작아지던, 이렇게 좋아 미치겠는게 몸에 익숙해지던 둘 중에 하나로 좁혀질 것이기 때문에 그 날이 언제 오던, 그 순간을 기다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멀어지기는 죽을만큼 싫었다. 영원히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은 생각을 하기도 싫었다. 차라리 좋아해,라는 말을 했을 때 미안,이라는 답을 듣고 그래? 그럼 말자.하는 깔끔한 관계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적어도 남녀 관계였다면 쿨하게 한 번 차이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적어도 나는 너와 같은 남자애였고 내가 아는 청가람은 그런 관계는 죽도록 싫어했다. 어느 날엔가, 우정이라기엔 조금 묘한 분위기가 풍기는 남자 둘이 나오는 드라마였나 영화를 보던 중에 청가람은 말했다.

 뭐냐, 저게. 징그럽게.

 그 말을 들었던 날 괜히 코가 시큰해져 결국 모두가 잠든 밤이 되서는 결국 베개를 잔뜩 끌어안고 소리 죽여 울었던 것도 같다. 나도 남자가 남자를 좋아한다는게 이상하다는 사실 정도는 안다. 아니, 이상하지는 않지만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 쯤은 안다.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안다. 그리고 청가람은 그 부류에 속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남자들끼리도 오래 친해지다 보면 여자들 못지 않은 스킨십이 종종 있곤 했다. 뭐 손을 잡는 다거나 팔짱을 끼는 그런 낯간지러운 것들은 하지 않아도 자리가 부족하면 허벅지 위에 앉는다거나 엎어져 있는 녀석 위로 엎어져 뒹굴거린다거나 뭐 그런 것들. 그럼에도 너는 그런 걸 싫어했었다. 자리가 부족하면 차라리 서 있었고, 장난을 치듯 등을 눌러대기만 해도 뭐하는 짓이냐며 팔짝팔짝 뛰어댔다. 그런 널 볼 때면 그냥 그런 애 인가보다,하고 생각해왔었긴 했지만 뭘 어쩌겠는가. 난 이미 널 좋아하게 됐는데.

"몰라, 모르겠다…. 자자."

 그런 고로, 나는 적어도 고백 같은 건 절대로 할 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마음을 받는 게 부담스러워서 피하는 정도가 아니라 더러워하고 혐오하는 감정으로 날 피할게 뻔할 뻔자였기 때문에 나는 내 마음을 더욱 더 숨겨야만 했다. 내 마음을 전할 수는 없어도 넌 계속 보고 싶었으니까. 마음을 숨기는 게 힘들더라도 네가 곁에서 웃어주고 내 얘길 들어주는 게 더 좋았으니까. 한 번은, 왜 하필 너였을까.하고 애꿎은 하늘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사실은 내가 오해하고 있던 게 아닐까?하는 우스운 생각을 하기도 했다. 네가 아니라 다른 어떤 여자애 때문에 생긴 마음을 헷갈린 걸 거라고 애써 부정한 적도 있었다. 마음 놓고 좋아할 수도 없는 사람 좋아할 바에야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게 훨씬 더 행복하고 즐거웠을 텐데 왜 멍청하게 같은 성의, 그것도 동성애라는걸 그렇게도 싫어하는 남자애를 좋아하게 돼서 마음을 숨기고 부정하고 고민해야 하냐며 스스로를 다그친 적도 있었다. '좋아하지 않는거다. 그래, 이제 널 봐도 아무렇지 않아야 한다,'하고 수십번, 수백번을 다짐해도 그 마음을 먹으며 수천번 날 깎아내리고 스스로를 험하게 대해도 네가 웃어주는 그 모습 하나로 밤동안 나의 모든 고민과 슬픔은 사라졌다.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널 좋아하게 된 내가 더럽다고 나를 상처주어도 네 연락 하나면 모두 사라졌다. 널 잊어야 한다고 이를 악물어도 네 말 한마디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네가 좋았다. 내가 막는다고, 멈춘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넌, 나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주은찬. 얘기 좀 해"

 나는 네 말을 못들은 척 했다. 수업이 끝나기 10분 전부터 졸린 듯한 연기를 계속 해 대다 종이 침과 동시에 나는 책상에 엎드렸다. 책상에 엎드리기 전 보았던 창 밖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겨울방학이 멀지 않음을 새삼 실감했다. 요 며칠만 버티면, 걱정은 조금 줄어들 것이었다. 엄마를 설득하고 설득해 겨울 보충수업을 신청하지 않고 스스로 공부해 보겠다며 독서실도 끊었다. 네가 보충을 하든말든 어떻게든 겨울방학 동안은 널 보지 않을 수 있었다. 길어야 한달이나 될까 하는 방학이었지만 그래도 그 동안 널 보지 않으면 눈에서 멀어진 만큼 이 죽을 것만 같은 기분도 덜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였다. 겨울방학은 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삼일만, 삼일만 버티면 되었다. 널 보지 못해 속상해도, 그런 날 보며 네가 섭섭해 해도, 삼일이면 끝이 날 일이라고 믿으며, 나는 내 팔에 더욱 깊숙이 머리를 묻었다.

"야! 얘기 좀 하자니까?"

 네 목소리가 커졌다. 나는 모른 채 했다. 분에 못이긴 네가 쾅, 하고 내 책상을 찼다. 나는 제법 짜증이 인 얼굴을 연기하며 널 바라보곤 다시 엎드렸다. 바로 곁에서 씩씩대는 네 소리가 들렸다. 나는 모른 채 했다. 뒤 이어 쿵쾅대는 발소리가 들리고, 그제서야 내 곁은 조용해 졌다. 주위가 조용해질수록 심장소리는 커져갔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조금은, 울컥하기도 했다. 왜 내가 널 좋아하게 돼서, 왜 하필 너여서 이렇게 힘들어야 하나 하는 마음은 네 얼굴을 본 순간 사라졌다. 단지 네 얼굴을 그렇게 짧게 볼 수 밖에 없는 사실이 슬펐을 뿐이었다. 제대로 보지도 못한 네 모습을 그리며 나는 눈을 감았다.

 오늘도 넌 가슴이 아프도록 예뻤다.

"가람…아…."

 그 날, 넌 내게 말도 건네지 않고 먼저 가버렸다.

 다음날, 넌 학교에 오지 않았다. 애들 말로는 전학을 갔다고 했다. 빽건은 매일을 붙어 다녔으면서 그것도 몰랐냐며 타박했다. '얘기 좀 하자니까!'하고 소리치던 네가 곁에 있는 것만 같았다. 너는 몇 번이나 말하려 했다. 해야 할 얘기가 있다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말했다. 그걸 무시한 건 나였다. 몇 번이고 기회를 준 널 차낸건 나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하교길에 덜덜 떨리는 손을 가다듬으며 네게 전화를 했었다. 왜 전화했냐는 네 목소리 대신 없는 번호라는 안내원의 말을 들어야 했다. 없는 전화번호임을 알고도 수십번을 더 전화했다. 나는 그 목소리를 지겹도록 들으며 엉엉 울었다.

 ​가슴 한구석이 통째로 비어나가는 기분을 느끼고 나서야, 나는 이게 내 첫사랑인 것을 어렴풋 알게 되었다.

 내 첫사랑은 그렇게, 내가 알기도 전에 끝이 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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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커플 봐봐. 저기, 저 작은 애 남자애 아냐? 커플이 아닌가?"

"남자애 맞는거 같은데? 그쵸, 선배? 손잡고 있는게 딱 커플이구만"

"게이, 게이 말로만 들었지 처음 본다. 에이, 선배! 너무 빤히 쳐다보지 마세요."

 그렇게 끝이 났어야 했다.

"…청가람."

"주은찬…?"

 다시는 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내 첫사랑은, 그렇게 다시 나를 마주했다.